인터뷰

국내 최고 꿈꾸는 ‘둘둘치킨’ 정동일 회장 (전)서울시 중구청장

이학성 기자 2009. 1. 22. 15:52

국내 최고 꿈꾸는 ‘둘둘치킨’ 정동일 회장

 

 

                                 “주민들과 땀흘려 가장 살기 좋은 中區 만들고파”


자동차정비공·리어카행상 고난 딛고
경영인·정치인으로 우뚝 선 ‘닭박사’

식욕의 계절, 가을을 맞아 맛있는 먹거리를 찾아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막상 맛집들이 모여있다는 거리를 가도 눈에 딱 들어오는 먹거리를 찾기는 쉽지가 않다. 특히 요즘은 너도나도 비슷한 음식들을 마련해 놓고 호객 행위에만 열을 올려, 어느 집을 가더라도 음식맛은 ‘거기서 거기’라는 기분이 든다. 게다가 계속되는 불경기에 지갑마저 얇아진 사람들은 음식점을 찾는 데도 예민해지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 독창적인 소스와 메뉴 개발을 경쟁력으로, 맛을 차별화하여 손님들의 입소문만으로 연일 성업중인 프랜차이즈 업종이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쇼윈도우를 보고 지나가다가 먹음직스런 치킨이 수십 마리 쌓여 있는 것을 보고 군침을 흘린 적이 누구나 한번쯤 있을 것이다.
‘둘둘치킨’은 수많은 사람의 시각과 미각을 자극, 일단 한번 먹어본 사람은 다시 안 찾고는 못 배길 만큼 끌어당기는 맛, 결정적으로 이 특별한 맛으로 승부하고 있다.

조류독감 때도 건강했던 통닭
 지난해 초 조류독감으로 치킨시장이 주춤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둘둘치킨’만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바로 닭의 사육에서부터 소비자가 섭취할 때까지 철저하게 관리하는 HACCP(식품위해요소중점관리제도)에 있다.
항상 믿고 먹을 수 있는 ‘둘둘치킨’은 이 업체만의 엄격한 재료관리와 소비자의 건강까지 꼼꼼하게 챙기는 신토불이 맛으로 여전히 사랑 받고 있다.
튀김옷이 얇고 바삭바삭해 씹는 기분까지 즐거운 치킨. 재벌 튀김으로 기름기를 쫙 뺀 살코기는 쫀득거려 아무리 먹어도 물리지 않는 맛을 낸다. ‘둘둘치킨’만의 이러한 특별한 맛은 바로 독특한 파우더와 14가지 엄선된 한방약재 등 각종 재료로 만든 소스, 그리고 무엇보다도 까다로운 관리과정을 거친 신선한 닭 때문이다.
이런 빈틈없는 기반을 바탕으로 둘둘치킨은 지난 1997년 프랜차이즈 설립이래 ‘가장 한국적인 신토불이 치킨집’이라는 평을 들으며 외국계 치킨전문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의 치킨집으로 성장했다.
특히 ‘둘둘치킨’ 정동일 회장은 “지점이 잘돼야 본사가 잘된다”는 경영이념으로 각 지점에 세심한 관리와 배려를 하고 있다. 현재 250여 개의 프랜차이즈가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이제 수도권 외 지방체인점도 다수 유치할 계획이다. 나아가 세계의 유명 패스트푸드점과 겨루기 위해 곧 북경과 미국 LA 등에 해외 지점도 오픈할 예정이다.
한국 프라이드치킨의 자존심을 자임하고 나선 ‘둘둘치킨’(영어명 TFC, Two Fried Chicken, www.22chicken.co.kr). 「닭박사」로 통하는 정동일 회장은 도공들에게나 있음직한 장인정신으로 특유의 입맛을 20년째 지키고 있다.

어머니와 소풍 오는 친구가 가장 부러웠던 소년
 대부분의 우리 장년층 이상의 사람들이 그러했듯 정 회장도 어려운 시기를 거쳤다.
1954년 전북 무주 태생인 정 회장은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15살의 나이에 상경, 자동차정비공, 리어카행상 등 갖은 고생을 하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시절 소풍 때 어머니가 음식을 싸서 따라오는 아이들을 보면 내색은 안 했지만 많이 부러웠습니다. 그리고 매년 어버이날이 되면 그때는 아이들이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았는데 어머니가 있는 아이는 빨간 카네이션을, 어머니가 없는 아이는 하얀 카네이션을 달게 했습니다. 정말 그때는 서러움을 넘어 가슴 한 구석이 저미어왔습니다.”
아주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어려운 집안형편 때문에 중학교에 진학할 수도 없었던 그. 그때를 살아온 많은 이들이 그러했듯 어린 시절 그도 극심한 보릿고개를 겼었고, 농사일을 돕고, 소를 먹이느라 여념이 없었다. 미래에 대한 희망찬 그림을 그리기는커녕 하루하루 먹고살기도 힘든 나날들이었다.
그러나 세상을 원망하지 않았다. 노트와 필기구 대신 스패너와 망치를 들고 잘 지워지지 않는 기름때를 묻혀가면서 기술을 배울 때도, 연탄 한 장으로 긴 겨울밤을 지샐 때도, 한여름에 짐을 가득 실은 리어카를 끌고 한강다리를 건너다닐 때도, 애써 오토바이에 실은 짐이 사라졌을 때도, 가게에 불이 나 몽땅 타버렸을 때도 절망하지 않았다. 그는 그럴수록 이를 악물고 앞만 보며 살았다. 어떤 악조건이나 역경에서도 도피하려 하지 않고 앞날을 대비하는 태도를 가지려 했다.
“1982년 과일장사를 그만두고 오토바이로 안주장사를 시작하게 되었죠. 당시 거래처를 잡기 위한 경쟁은 너무나도 치열했습니다.” 정 회장은 미래를 위해서도 좋을 것 같아 거래처가 아니라도 매일 들러 주민들과 얼굴을 익혀나갔다. 그것이 오늘날 둘둘치킨을 국내 최고의 치킨집으로 성장하게 한 경영전략의 기초가 됐다.
“내가 공부하는 이유는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가 아니라 더 큰 봉사를 하기 위한 것이다. 사회에서 받은 은혜를 제대로 돌려주기 위해 무엇부터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으로 정 회장은 1995년부터 수도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상경한 후부터 항상 공부에 대한 꿈을 잃지 않고 있었지만, 그럴만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군대 제대 후 직장에 다니느라, 장사하느라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晩學 1년 만에 고입·대입 검정 합격
 ‘온고지신’(溫故知新). 그는 이 말의 뜻을 항상 마음속에 새기며 공부에 임했다. 그러나, 막상 사업과 공부를 병행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밤늦게까지 장사하고 새벽같이 학원에 나가서 공부하기가 힘에 부쳤다. 그러나 그에게는 뚜렷한 목표와 꿈이 있었다. 그렇기에 만학도라는 것에 전혀 개의치 않고 누구보다 열심히 학원에 다니면서 공부했다.
정말 오랫동안 학업을 놓았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따라가기가 벅찼다. 그는 뒤늦은 학업을 만회하기 위해 장사를 하면서도 틈틈이 시간을 쪼개 공부했다. 학력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시대가 가고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현실의 벽은 높았고, 또한 배우지 않고 시민의 일꾼이 된다는 것은 그들에 대한 결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정 회장은 어렵고 힘든 생활 속에서도 시간을 내어 배움의 길에 매진했다. 그렇게 1년, 당당히 고입과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대학에 갈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실로 소년시절, 자동차정비소를 다니며 고시학원을 기웃거리던 때로부터 25년만의 일이었다. 이후 1997년 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 지방의회 과정과 한양대 지방자치대학원을, 이듬해인 1998년에는 고려대 경영대학원을 수료했고 2005년 동국대학교 경영학과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그는 단순히 선거에만 활용하려고 배우거나 어떤 일을 꾀한 적이 없다. 삶도 그렇고 정치도 그렇고, 마라톤을 하듯 장기적인 안목으로 세상을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긴 호흡과 지속적인 노력을 하였다.
그는 1994년 민주당에 입당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5년 구의원 선거에 후보자로 지명되었지만 당내 상황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보기 좋게 낙선을 했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주저앉지 않고 더욱 열심히 활동하리라 다짐하며 시민들을 만나고 봉사하며 그만의 입지를 구축했다. 그 결과, 1998년 서울시 중구의회 제3대 구의원으로 당선되었고, 2002년에는 서울시의회 보궐선거에서 당당히 중구 제2선구에서 당선되었다. 그는 그 때, 대세도 중요하지만 민심은 결국 진실한 일꾼을 알아준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주민들은 기존 정치인에 대한 환멸과 식상함으로 인해 열심히 발로 뛰는 그를 일꾼으로 인정해주었다.

“CEO는 전문적인 監督과 같은 것”
 그는 지난 2003년 10월 6일, 서울시의회 대표로 평양의 류경 정주영체육관 개관식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3박 4일 일정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당시 남측 참관단은 고 정몽헌 회장의 부인인 현정은씨를 비롯한 정씨 일가와 농구단, 기자단 등 80여 명에 달했다.
또한 이날 방북길에는 현대건설과 현대자동차 등 체육관 건설에 참여한 15개 사가 대한적십자사에 기탁하는 방식으로 북측에 기증하기로 한 소 100마리도 따라왔다. 분단 반세기, 정확히 57년 만에 처음으로 복원된 경의선 육로를 통해 군사분계선을 넘어 개성을 거쳐 평양에 들어갔다. “적대시하던 이전 모습과는 달리 수 차례 남북교류를 통해 북한에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친철한 미소와 웃음으로 따뜻하게 우리를 반겨주었습니다. 역시 남이 아닌 한 핏줄이란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한민족의 통일이 멀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방북 소감이다.
“CEO는 이름과 자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문적인 감독과 같은 역할을 해야한다. 즉, 어떤 사안에 대해 과감히 결단을 내리고 행동에 옮기며, 그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CEO의원’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그는 이런 각오로 서울시와 중구의 발전을 위해 활동하게 되었다. 이를테면, 서울시 예산특위 위원으로 있으면서 중견간부들에 대한 날카로운 질의와 감시를 했다. 그로 인해 당시 불요불급한 예산은 뒤로하고, 시한을 다투는 사업예산부터 우선 배정하여 집행하도록 하는 등 예산의 효율적인 운영에 한몫 하였다는 주위의 찬사를 받았다.
그는 항상 지역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심각하게 고민했다. 아울러 발로 뛰는 실천력과 사안 해결력을 갖추려 노력했다.

“항상 어르신 공경하는 마음 가져야”
 “저는 구민과 함께 일하는 동반자 관계라는 전제 하에, 구민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한 활동을 의정활동의 기본으로 삼았습니다. 21세기 중구의 발전과 힘찬 도약을 위해 중구의 희망의 메신저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는 앞으로도 중구를 서울시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구, 복지의 중구, 희망의 중구가 되도록 역할을 하기를 희망한다.
그는 복지 중구를 꿈꾸면서 무엇보다 먼저 어르신들을 생각한다.
오늘날의 발전을 위해 밑거름 역할을 한 어르신들에게 항상 공경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렵고 힘든 시절을 열심히 살아온 어르신들이 바로 국가의 부흥과 풍요로운 삶의 터전을 일구어낸 주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책임을 한번도 회피하지 않았고, 최악의 상황에서도 포용력을 발휘하여 항상 최선의 결과를 얻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도의에 어긋나는 말과 행동은 해본 적이 없다. 이러한 신뢰와 도덕성을 가지고 앞으로도 희망의 배달부, 행복의 배달부로서 주민들에 대한 봉사의 행보를 늦추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삶의 터전을 다진 진정한 의미의 고향인 중구는 그에게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다. 지금도 그는 남산 위에 뜬 달을 보며 얼굴도 잘 생각나지 않는 어머니를 떠올린다고 한다. 그러면 그의 가슴속이 따뜻해지고 힘이 솟는다고 한다.
그런 중구를 위해 그는 정성과 최선을 다해 봉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노력이 어느 정도 결실을 보긴 했지만, 그러나 시작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중구에 더욱 커다란 비전과 희망을 제시하고, 꿈을 심고 싶은 것이다. 어느 곳보다 살기 좋고 아름다운 중구를 구민들과 함께 힘을 모아 만드는 것이 그가 늘 갖고 있는 바람이다.
                                         

                                                                                                                                                           사회부 / 이학성 기자


<< 정동일 회장 프로필 >>

◎ 학 력
동국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동국대학교 북한학과 졸업
중앙대학교 사회개발대학원 수료
한양대학교 지방자치대학원 수료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수료
동국대학교 행정대학원 재학 중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재학 중

◎ 경 력
㈜일동인터내쇼날 대표(둘둘치킨)
한국대학육상연맹 회장
국민생활체육협의회 이사
한국환경장애연구협회 자문위원장
사단법인 한국의류진흥협회 회장
한마음라이온스클럽 회장
사단법인 공해추방국민운동본부 중구지회장
새마을운동 중구지회장
열린우리당 중구지구당 부위원장
중구의회 의원(3대)
서울시의회 의원(5·6대)
중구의회 도시건설위원장
서울시의회 열린우리당 대표
서울시의회 장묘문화개선특별위원회 위원장
서울시의회 도시관리위원회 간사

서울시의회 예산결산계수조정위원
중구경제포럼 이사장
열린우리당 서울시당 상무위원협회장
사단법인 서울시 중구 의정회 회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현)서울시 중구청장


◎ 상 훈
서울 직장인상(경영인 부문, 2001. 1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