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 시대 최고의 헤어아티스트 박준

이학성 기자 2009. 1. 22. 15:26

< 匠人> 이 시대 최고의 헤어아티스트 박준
"나의 성공 비결은 인내와 도전정신"
창포 성분 천연샴푸로 또 하나의 도전 시작


산업이 고도로 발전해가는 것은 인간이 더욱더 편리해지고 싶어하는 데서 비롯된다. 즉, 편리함에 대한 욕구가 끝이 없기에 지속적으로 새로운 산업이 탄생하고 있다. 특히 21세기는 서비스산업의 경쟁시대가 될 것이다. 고도화된 서비스 산업의 발전에 따라 사람들은 그 편리함 뒤에 아름다워지고 싶어하는 욕망을 갖기 마련이기에 미용산업은 더욱 더 발전해나갈 것이다. 그 아름다움에서 가장 기본적인 헤어스타일은 우리의 첫 이미지를 좌우하는 아주 중요한 포인트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전문 미용 인재를 육성하여 앞서가는 감각으로 고객을 소중히 생각하고 아름다운 기쁨을 함께 하는 곳이 있다. 미용산업의 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 ‘박준뷰티랩’이다. 박준뷰티랩은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에 맞추어 앞서가는 감각과 새로운 테크닉, 그리고 고객 개개인의 개성있는 헤어스타일을 추구하는 맞춤서비스를 제공하여 고객감동을 실현하고 있다.

박준뷰티랩 리더인 박준 원장(54)은 1981년 ‘박준미용타운’ 개점이래 국내외 100여 개의 프랜차이즈를 보유하고 있다. 박 원장은 24년 동안 미용실의 경영혁신을 이루어 테마가 있는 감각적인 매장 이미지를 구축하고 전 매장을 직영관리 시스템으로 운영하고 있다.

봇물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외국브랜드에 밀리지 않고 국내에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다른 업계보다 빠르게 프랜차이즈화했기 때문이다. 그는 매월 지점장들을 모아 헤어패션, 서비스의 차별화 등 본사와 지점의 상생을 위한 전략 교육을 펼치고 있다. 또한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박 원장은 잡지 CF 드라마 오락프로 패션쇼 등에서 폭넓은 활동을 펼치며 ‘예술 미용’의 선구자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전북 원광대 생활과학대학 뷰티디자인학과 정 교수로 출강중인 그는 "우선 자기 전공에 신바람이 나도록 하는 일이 우선 과제"라면서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기업체 등의 강사로도 자주 초청되는 그는 그때마다 "개성 연출은 자기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신감을 갖게 하는 개성미야 말로 일의 효율성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라는 인식을 심어준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새로운 도전에 적극 나서고 있다. "뷰티산업을 이끈다는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경영을 해온 사람으로서 늦은 감은 있으나 ‘박준스 두발제품’과 창포가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모색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창포에 관한 과학적이고 학술적인 연구활동에 깊이 관여하진 못하지만 현재 출시되고 있는 박준스 두발제품에 창포를 첨가해 출시한 자연친화적인 ‘천연샴푸’를 세계화하는 꿈을 키우고 있는 것. 시간이 더 걸리는 작업일지라도 여러 단체에서 진행중인 창포에 관한 연구를 토대로 친환경적인 제품을 내놓을 것이라는 그는 자연에서 얻은 귀중한 식물을 재료로 인간에게 요긴한 제품을 만들고, 이를 다시 자연으로 되돌려보내는 친환경적인 기업 활동이 작은 애국심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해마다 단옷날이 되면 우리 선조들은 창포물로 머리를 감았습니다. 이제 그 창포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정착시키기 위해 학문적으로 연구해왔던 논문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70여 만 명의 미용인들 중 가장 성공한 인물로 꼽히는 박준 원장. 그는 헤어디자이너로 성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정신력과의 승부’를 꼽았다. 기술이나 미적 감각 등은 누구나 노력하면 가질 수 있는 것이라는 것. 한반도의 땅끝 해남이 고향인 박 원장은 무작정 상경해 YWCA 앞을 지나가다 미용실을 보는 순간, 남자가 여자의 머리를 만지는 모험적인 일을 시도해보자는 생각으로 미용일을 시작했다. 그는 "그때는 남성 미용인은 생각지도 못했던 시절이라 남자도 미용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시키는 일과 여자만의 세계에 적응하는 일이 가장 어려웠던 일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의 내가 있게 된 것도 그런 악조건들을 극복하기 위한 쉼 없는 노력의 결과"라면서 "그때의 인내와 도전정신이 결국 세계 최초의 창포샴푸 같은 기능성 이·미용상품을 개발해내는 등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자산이 되었다"고 강조했다.

박 원장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을 더 들어보고 싶었다.

해남에서 무작정 서울로 상경한 14살 소년. 하지만 어린 소년에게 서울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박 원장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다며 그 시절을 떠올렸다. 하지만 어떤 일을 해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마음을 잡지 못하던 그는 22살이 되던 해, 우연히 미용실 앞을 지나다가 미용일에 마음을 사로잡힌다. 당시 반항적인 성격의 그는 "바로 저것이다.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지금은 달라졌지만, 당시만 해도 남자가 미용실에서 일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여자들만의 세계에서 적응하며 생활하기란 쉽지 않았다. 박 원장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어려움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을 이겨냈기에 지금은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고 했다. 당시 담배를 피웠던 그는 손님에게서 ‘담배냄새가 난다’는 말을 듣고 바로 담배를 끊었다. 반드시 하고 싶은 일이었기에 그만큼의 각오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3년여 동안 보조로 일하면서 남자가 허드렛일을 하는 것을 본 사람들이 측은해했지만 그는 천직이라고 생각하고 일에만 푹 빠졌다. "과정이 어려울수록 사람들은 쉽게 포기하지요. 정신력이 강한 사람만이 살아남게 돼요." 박 원장은 정말 미용일을 하고 싶다면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인내력과 정신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마네킹으로 연습하면서 점차 실력을 인정받아, 어느덧 손님의 머리를 손질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러나 처음에는 남자 헤어디자이너를 꺼리는 고객도 있었다. 박 원장은 "지금은 보편화됐지만, 일반적으로 남자 미용사를 거부하는 정도가 심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하지만 그의 뛰어난 실력과 감각으로 점차 고객들이 늘어났다. 박 원장에게도 초보시절의 끔찍한 실수의 기억이 있다. 처음이라 잘하고 싶은 의욕이 앞선 나머지 손님의 머리카락 대신 귀를 벤 것이다. "가위가 날카로워서 조금한 닿아도 피가 많이 나요. 다행히 큰 문제없이 넘어갔지만, 기억에 남는 일 중 하나죠."

현재 국내뿐만 아니라 영국 미국 캐나다 프랑스 독일 등에 프랜차이즈를 두고 있는 박 원장은 "한국의 최고는 세계 최고여야 한다"고 했다. 세계 최고를 위해 그는 2000년에 과감하게 재충전을 위해 영국 유학을 결심한다. 한참 국내 사업으로 바쁜 시기에 그의 행동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패션감각이 앞선 선진국의 미용문화를 접하고 싶었던 그는 영국의 미용실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2년 5개월의 유학생활은 다른 유학생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혼자 밥을 해먹으면서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정신은 맑아지고, 의욕이 생겼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결정한 것 중에 가장 잘 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어렵고 힘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적극적이며 다양한 사회 봉사활동을 함으로써 올바른 기업문화와 기업의 사회적 기여라는 명제를 실천하고 있기도 하다.

독일에는 ‘마이스터’(Meister) 제도가 있다. 우리나라로 비유하자면 ‘장인’ 혹은 ‘명장’과 같은 의미로 그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로 인정받은 사람을 일컫는다. 한마디로, 한가지 기술에 있어서 경지에 다다른 ‘달인’(達人)이다. 33년 간 외길 인생을 살아온 박 원장은 분명 한국 미용의 마이스터다.

"미용은 아름다워지고 싶은 꿈을 실현해주고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문화산업"이라고 당당히 말하는 그는 미용인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동안 보다 체계적인 교육에 투신할 계획이며, 미용을 하나의 문화산업으로 정착시키는 데 초석이 되고자 한다고 했다. 가을날 황금들녘을 바라보며 이마의 땀을 닦는 농부의 마음으로, 미용의 토양에 씨를 뿌리고 열매를 거두겠다는 것이다.

<박 원장 프로필>

-1951년 전남 해남 출생

-1964년 마산서국민학교 졸업

-1972년 미용계 입문

-1995년 주식회사 P&J 설립, 박준뷰티랩 프랜차이즈 사업 시작, P&J 미용가위 국산화 작업 완료

-1997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화예술지도자과정 졸업, 숙명여대 경영 대학원 초빙교수

-1999년 고려대학교 컴퓨터정책과학대학원 졸업

-2002년 박준뷰티랩으로 CI 교체, 헤어쇼 개최

-2003년 ‘박준스’ 두발제품 출시, 청담동 본사 사옥 리노베이션, ‘박준스창포’ 두발제품 출시,


                                                                                                                     사회부 / 이학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