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탐방 ㅣ (사)인천문화발전연구원 이병화 이사장
“세계로 향한 '글로벌 문화' 자양분 조성해야”
'서양문화' 흡수한 관문에서 동서양 아우를 휴먼타운 중구 '제2 인사동' 조성
미래세대에 역사정신 살린 문화국가 구축위해 인문사회교육 등 활성화 시급
근대역사의 상징 인천(仁川)... 120년 전 모든 문물의 최초 도입지였던 인천이 새로운 문화타운으로 도약한다. 특히 인천 자유공원 밑의 13개 옛스런 건물과 100년이 넘은 고적한 창고, 일제시대 목조건물, 서양식 적벽돌 건물이 전시실과 아틀리에, 스튜디오, 공연장, 작업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일본의 선사(船社) 목조건물인 우선(주)는 120년 전 1888년 9월 8일 지어진 일본식 건축물이다. “과거 농번사회와 산업사회를 거쳐 형성된 성취위주의 틀에서 이젠 벗어나 사람냄새가 나는 문화향유와 역사정신을 새롭게 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하는 인천의 핵심인 중구 신포동에 위치한 (사)인천문화발전연구원 이병화(60) 이사장을 만나보았다.
국내 최초 ‘인천부사(仁川府史)’ 완역 근대사 ‘한 눈에’
이병화 이사장은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인천 중구지역이 가진 역사문화를 살릴 구체적이고 포괄적인 문화발전을 위해 설립된 저희 연구원은 각계 지인들과 함께 지역사회에 널리 홍보하기 위해 발족됐다”고 밝히고 “초기 시의원 의정활동 당시 산업과 건설 등 전문분야를 다룬 적이 있지만, 현재 문사위원 입장에서 보면 인문사회과학적 사안이 의외로 복잡다단합니다. 이러한 인천 역사의 정체성에 새로운 조명작업의 일환으로 일제 당시 인천 역사를 기록한 일어판 ‘인천부사(仁川府史 l 개항 1883~1933년 인천사)’를 인하대 일어교수 등 30여분과 1년여 번역작업 끝에 완역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고 말하는 李 이사장은 문화발전을 위해 직접 행정에 참여함으로서 잃어버린 인천문화와 역사유산을 되살리는 ‘문화 전도사’다.
130년 전 영종진서 유사 독도영유권 사건 인천시민도 몰라
李 이사장은 “잊을 만하면 간간히 터지는 일본의 독도발언에 방송 3사와 3대 신문에서 일본지탄 의 소리가 뜨거워집니다만, 독도사건과 비슷한 일이 130년 전 인천 영종진에서 있었죠. 일본이 독도를 주변수로측량이란 미명하에 독도를 자기네 거라 우기는데요, 그건 이미 첨단위성에서 다 분석이 끝난 겁니다. 당시 영종진에 무단 침입해 사단급 포대인 영종진을 지키던 병사 35명을 죽이고, 대포 36문을 일본군에게 빼앗기는 패배를 했어요.”라고 처음 밝혀지는 피의 역사를 말한다.
결국 일본의 군사적 압력으로 굴욕적인 '강화도 조약'까지 체결하게 되고, 당시 전사한 35명의 조선군 추모제를 2년간 지냈으나, 1877년 일본에 의해 사라졌다.
李 이사장은 “강화도조약은 35명의 전사자와 영종진을 내준 뼈아픈 역사의 교훈이며, 영종진은 인천과 조선을 방어하던 최전선 이였던 만큼 복원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또 “타 지자체들은 역사문화 복원에 심혈을 기울이는데, 웬일인지 인천은 국제공항이라는 인프라 외에는 살피지 않고 있어 지역문화를 알리려는 지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한다.
이렇듯 뼈아팠던 역사를 발굴, 후대에 알리기 위해 (사)인천문화발전연구원은 관계자들과 운요호사건 당시 전사한 조선군 35명의 추모제를 무려 128년 만에 부활해 매년 영종도에서 행사를 지내고 있다.
10여 년간 정부지원 받지 않는 순수민간 ‘문화전도단’
인천문화와 역사를 살리려는 순수한 열정하나로 달려온 李 이사장은 문화를 위해 일체의 관변단체의 지원을 거부해 왔다.
李 이사장은 “10여 년 동안 예산을 받지 않고 자생적으로 운영하다보니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지인들께서 십시일반 도움을 주시는 것으로 꾸려가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자생문화 프로그램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그건 인천의 대표적인 명소와 관광지, 우체국, 은행 등 역사적인 건물을 우표로 발행해 일반인에 널리 알리고, 수익 일부를 문화적 공익사업에 활용할 것”이라고 공개하고 “또한 예술가들의 갤러리로 본 연구원을 사무실 겸 화랑으로 쓰고 있어요. 그림전시를 꼭 갤러리에서 하란 법은 없잖아요. 많이 널리 보여주는 게 목적이지 꼭 비싼 화랑을 빌릴 필요가 없잖아요... 그래서 언제든지 쓰도록 오픈했어요. 거리 전시회도 호응이 높았죠. 이런 발상의 전환이 동기유발이 되어 시에서도 지원 움직임도 보일만큼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요. 미술인들이 거리전시를 하려면 도로 세를 내야하는데 시에서 이를 보조한다면 뿌리를 내리리라 봅니다.”말하는 그는 토박이로서 인천문화와 역사를 사랑하는 진정한 ‘문화전도’의 일꾼이다.
인간냄새 물씬 나는 ‘제2 인사동’ 인천문화특구 조성
인천 중구지역은 일제시대 당시 도로구획정비사업을 진행하던 중에 2차 대전 종결로 미완성된 곳이다. 현재 중구청 앞 지역 일대에서 유럽식 도시계획을 추진하다 철수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당시에 지어진 일본식 고옥들과 유서 깊은 서양식 건물이 산재한 이 지역은 근대와 현대가 어우러진 고풍스러움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곳이 많다.
이러한 배경을 가진 도시에서 성장한 李 이사장 “2만 불 경제시대에 초고층 건물도 많아 졌지만, 너무 획일적이에요. 물론 편리함이 극대화되고 살기는 좋아 졌지요. 거대한 마켓과 백화점 등 너무 획일적인 것에 경직된 부도심권이다 보니 볼 것이 너무 없어요. 시민정서에도 안 좋고요. 프랑스 파리가 별겁니까? 세계의 화가들이 모인다는 몽마르뜨르 언덕 가보세요. 조그마해요. 세느강도 한강에 비하면 너무 좁죠. 그에 비해 인천 중구지역도 문화컨셉을 불어 넣으면 그에 못지않게 살려 낼 수 있어요. 이곳을 ‘제2 인사동’으로 만들고 싶어요. 높고 낮은 언덕이 조화로운 가운데 들어선 옛 술집과 현대풍의 주점들, 양복집, 고급식당과 서민식당, 교회, 바다가 보이는 언덕 집 등이 편안하고 인간냄새와 정취가 푹 베인 이곳을 잘 어루만져 놓는다면, 많은 분들이 돌아와 점포를 얻으려고 할 겁니다.”며 과거 인천이 간직한 중구의 문화적 배경을 설명한다.
21세기 ‘모든 길은 문화’ 강조... 인문사회 중시해야
세계는 좁다. 지구촌시대라 하지만 아직 외국문화를 다 알지는 못한다. 관광을 할 때 가장 보고 싶은 곳이 시장이다. 꾸밈없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李 이사장은 “외국 선진국에도 빈민가, 거지는 다 있죠. 그들은 다 보여줍니다. 우리도 지저분한 거리, 뒷골목을 감추려 하지 말고 그대로 보여 주어야 한다. 초호화 백화점은 외국에도 많다. 우리나라의 초일류 백화점을 보러 오지 않는다. 이들은 사람냄새를 맡으러 온 것이다. 구석구석을 보고 싶어 하는 심리를 간파해야 한다. 인천 자유공원이 몽마르뜨와 별 차이 없어요. 미술인들이 조성돼 이곳에서 그림을 그리며 문화정서를 음미하고 감상하는 풍토를 만들면 돼요. 이제 문화를 심어야 사람이 오는 시대가 된 거죠.” 라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청소년 가치관’-‘청정 인터넷 만들기’ 에도 문화 접목
현재 인천광역시 시의원이기도 한 이병화 이사장은 “인터넷 유해정보들이 심각합니다. 맑아야 할 청소년들의 가치관이 잘못된 정보들로 인해 인생의 황금기에 정신적 육체적 혼란을 빚고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전국적으로 그 심각성과 폐해는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만큼 날이 갈수록 심각합니다. 다행히도 인천에는 이클린센터(eCleanCenter)가 설치돼 조기에 차단할 수 있게 될 뿐아니라, 청소년에게 문화와 역사를 잘 가르쳐 훌륭한 지역일꾼으로 길러야 할 것”이라 말하고 이클린센터를 인천의 대표적인 인터넷 청정구역 만들기 운동으로 활성화 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회부 / 이학성 기자
프로필-
▲ 인천창영 초등학교(1962) 인천고등학교(1969)
▲ 건국대학교 화공학과(1973)
▲ 제2대 인천시의원, 제5대 인천시의원(현)
▲ 새얼재단 운영위원(현)
▲ (사)인천문화발전연구원 이사장(현)
▲ 한나라당 시지부 중앙위원부회장(현)
(사) 인천문화발전연구원 외관 건물 모습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벽면 각층 마다 전시되어 있는 연구원 내부
연구원 입구, 잘가꾸어진 정원을 배경으로 예술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문화원자체를 사무실겸 화랑으로 오픈시킨 이병화 이사장(좌측)
제 6기 향토해설사 교육 이수 및 수여 장면(앞줄 가운데 이병화 이사장)
영종진 추모제 현장
영종구읍뱃터에서 열린 영종진 피격사건 전몰영령 추모제
영종진 복원을 위한 추모 및 발대식후 기념촬영(좌측 8번째 이병화 이사장)
일제 당시 인천 역사를 기록한 일어판 인천부사 (仁川府史 l 개항 1883~1933년 인천사)를 인하대 일어교수 30명과 1년여 번역 작업끝에 완벽한 성과를 거두어 잃어버린 인천문화와 역사유산을 되살리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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