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사태 가 우리사회에 남긴것.
6년간 소외되었던 인화학교 문제영화한편으로 2개월로 일단락.
공지영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도가니’가 전국을 강타했다. 광주의 한 청각장애학교에서 벌어진 성폭력 사건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10월10일 개봉한 지 보름 만에 전국에서 300만 이상의 관객을 불러 모으며 흥행 대세를 이어가고 있다. 개봉 후 학교장과 교사에게 성을 무참히 짓밟힌 청각장애아들의 무언의 절규는 객석을 분노와 오열로 들끓게 했고, 가해자들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은 범국민적인 공분을 샀다.
‘도가니학교’ 특별수사 일단락…14명 형사입건
영화 ‘도가니’의 배경이 된 광주 인화학교 성폭행 사건 의혹에 대해 재수사에 들어간 경찰이 성폭행과 강제 추행 사실을 추가로 확인하는 등 14명을 형사 입건하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했다. 광주지방경찰청은 지난 2004년 원생 A(당시 17세)양의 손발을 테이프로 묶고 성폭행한 뒤 감금한 혐의(강간치상)로 교직원 B씨와 2005년 A양을 강제추행하고 돈을 주겠다며 성매매를 제의한 교사 C씨를 형사입건했다고 18일 밝혔다.
이 두 명의 가해자는 2006년 당시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됐다. 또 경찰은 성폭행 은폐를 주도하고 업무상 횡령 등 각종 법인 비리를 주도한 법인 임원 2명을 입건했으며, 영화 ‘도가니’에 등장하는 세탁기 폭행 장면과 관련, 여자 원생을 폭행한 당시 인화학교 학생을 폭력 혐의로 입건했다. 그러나 경찰은 1985년부터 6년간 학생 4명을 강제 추행한 퇴직 교사 R씨를 비롯해 5건의 성폭력 사건과 1건의 법인 비리 등에 대해서는 공소 시효 경과로 불기소하기로 했다. 이 밖에 의혹이 주장된 1965년도 원생 암매장, 법인가족의 학생 대상 누드화 작업, 강제노역 등은 사실상 사실관계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내사 종결했다.
법인이 허가 취소된 우석측 인화학교, 기숙시설 인화원을 포함한 건물 4동과 부동산 등 모든 재산은 시로 귀속된다. 우석은 행정소송을 않기로 해 영화 ‘도가니’로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던 인화학교 문제는 사건 발생 6년여 만에 마무리됐다.
성범죄 양형위 ‘아동·장애인 성범죄 양형개선 방안’ 토론회
공지영씨도 참석해 솜방망이 처벌 비판
서울장앙지법, 고법 등 판사들도 참석해 합의제, 친고죄 폐지 논의
29일 서울중앙지법 대강당에서 ‘아동·장애인 성범죄 양형개선 방안’을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소설가 공지영 씨는 “성범죄는 살인보다 더 삶을 짓밟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대학 2학년이던 스무 살 겨울 저녁 미사를 마치고 집에 가던 길에 40대 중반의 남성에게 공사장으로 끌려갔다가 가까스로 도망친 적이 있습니다. 그날 이 남성은 ‘시키는 대로 해라’며 위협했고 너무도 놀란 나는 온 힘을 다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그 뒤로 얼마 동안은 밤길을 혼자 다니지 못했습니다. 성인인 저도 그 정도로 영향을 받는데 어린아이들에게 주는 영향은 살인보다 과연 덜한 문제일까요?”
29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1층 대강당에서 열린 아동·장애인 성범죄 양형개선 방안을 주제로 한 토론회에 참석한 소설 ‘도가니’의 저자 공지영 씨는 이런 의문을 토대로 도가니를 집필했다고 말했다. 이날 공 씨는 아동·장애인 성폭력 범죄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관행을 강하게 비판했다. 공 씨는 “(가벼운 형량은) 남녀 간 성을 바라보는 시각차에서 비롯되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며 “법관 자리가 오래도록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점에서 비롯된 측면도 큰 것 같다”고 지적했다. 공 작가는 이어 "도가니를 집필하던 중 사회가 잔인하다고 느낀 것이 합의와 관련된 부분이었다"며 "선생이 장애아를 성폭행했는데 어떤 합의가 있을 수 있나. 합의가 처벌의 완화에 도움이 됐다는 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고 분개했다. 또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이가 고려되지 않고 비장애인의 입장에서 판결을 하게 되면 피해자에게는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토론회에는 공 씨를 비롯해 박영식 변호사, 이윤상 한국성폭력상담소장, 이주원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이 참석했다. 이주원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성범죄에서 피해자의 원상회복은 사실살 불가능하다"면서 "합의라는 것은 강제해서 받아내는 산물로 가해자가 진심으로 뉘우치는 도구가 되지 못한다"며 합의제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를 냈다. 박영식 변호사는 "성범죄에서 합의를 감경요소에서 배제하는 데는 반대한다"면서도 "지방에서 판사로 재직할 때 성범죄 합의가 믿을 게 못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결국 판사들이 성범죄 발생 지역별·대상별로 합의의 수준과 그 배경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친고죄 폐지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이윤상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성범죄는 기본적으로 친고죄와 연동하고 있다"며 "친고죄는 성범죄를 사인간의 약속으로만 왜곡시키는 대표적인 제도로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소장은 또 "성범죄의 85%가 아는 사람에 의해 벌어지고 있는 통계에서 알 수 있듯이 성범죄에서 피해자가 직접 고소를 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며 "성범죄 피해자가 직접 신고해야 처벌할 수 있는 친고죄는 성범죄의 특성을 잘 알지 못하는 데서 나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토론회에서 사회자로 나온 박상훈 변호사는 "도가니 영화에서 폭행 협박을 가하지 않고 사탕으로 유인해 성범죄를 한 경우 형법상 강간으로 인정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판단이 문제가 되고 있다"며 "이번 토론회를 계기로 아동과 장애인에 대한 양형의 기준이 다시 정립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양형위는 지난 전체회의에서 13세 미만 아동 성범죄의 권고형량을 높이는 데 의견을 모았으며, 형량과 관련해서는 공청회 및 11월 중순부터 벌이고 있는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를 반영해 확정하기로 했다. 양형위는 기존 성범죄 유형(강간죄, 강제추행죄, 13세 미만 대상 성범죄)에 장애인 대상 성범죄를 신설하기로 했다.
미국에서도 총 15개관이 개봉돼
영어 제목은 ‘SILENCED’ 미국 현지 반응 ‘경악’
영화 ‘도가니’가 영어 제목 ‘SILENCED’로 미국 현지에 개봉됐다. ‘도가니’의 투자 배급사 관계자는 11월 11일 미국에서 영화 ‘도가니’가 영어 제목 ‘SILENCED’로 총 15개관에서 개봉됐다고 전했다. ‘도가니’의 영어 제목 ‘SILENCED’는 영화 주 줄거리와 등장인물들의 아픔과 슬픔을 모두 담은 ‘침묵 당한’이라는 뜻으로 한국에서 상영한 19금 최종본을 편집 없이 상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 인화학교를 배경으로 한 장애아동 성폭력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도가니’는 사건에 대한 전 국민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뒤늦게 사건의 재조사가 이뤄지고 해당 학교의 폐쇄 요청이 쇄도하고 장애 아동에 대한 인권 문제가 재조명되는 등 단순히 영화를 넘어서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비화됐다. 한편 영화 관계자에 따르면 영화를 접한 미국 현지 관객들 또한 충격과 경악의 반응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도가니>사태 이대로 끝난 것이 아니다.
‘사회복지사업법 개정 10만인 청원운동’ 역시 뜨거운 ‘도가니 현상’
‘인화학교대책위’는 광주시청 앞, 광주터미널 등에서 천막농성 벌이고 있어
10월 8일부터 전국의 <도가니> 상영관 앞에서 동시다발로 시작한 ‘사회복지사업법 개정 10만인 청원운동’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참여했다. 국제 영화제 기간인 부산의 한 극장 앞에서는 몇 시간 만에 1000명이 넘는 시민들의 서명을 받았다. 구하기 힘든 유명 영화나 연예인의 콘서트 티켓을 발매하는 것도 아닌데 시민들은 시간을 내어 줄까지 서면서 서명운동에 동참했다. 가히 무쇠도 녹일 만큼 뜨거운 ‘도가니 현상’이다.
한편 ‘고아주인화학교 성폭력대책위원회(이하 인화학교대책위)’는 현재 인화학교를 설립한 우석법인의 취소 및 인화학교, 인화원의 성폭력 및 인권유린 사건의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며 광주시청 앞, 광주터미널 등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수십 년 동안 사회복지시설의 비리와 생활인의 인권 문제는 크고 작은 ‘도가니’를 만들며 끓어올랐다가 식어버리기를 반복했다. 성람재단, 석암재단, 성실요양원, 은혜사랑의집, 심신수양원, 바울선교원, 김포사랑의 집, 전북영광의집, 전북사랑원 등 일일이 이름도 거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지시설의 문제는 끊임없이 이슈가 되었지만, 대부분 개별 시설 운영자들을 처벌하는 수준에서 그쳤다.
인면수심의 범죄 행위를 저질렀는데도 “사회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지역사회 발전에 이바지한 점을 참작하여” 가벼운 형벌에 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영화 <도가니>에서 보여주는 상황은 영화적 상상력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현실이고 일상이다. 오히려 영화는 현실에 미치지 못한다. 사회복지시설의 문제는 권력에 의한 관계의 변질이 핵심이다. 많은 사회복지시설의 운영자들이 처음에는 국가와 사회가 부양하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측은지심에서 시설운영을 시작하지만, 제공자와 수혜자가 정해져 있는 일방적인 관계가 수십 년간 지속되면서 이들 사이에는 권력 관계가 형성된다.
특히 시설의 운영자가 국가나 공공기관이 아닌 개인이나 개인이 설립한 법인일 경우, 관계의 변질은 필연적으로 비리나 폭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관계의 변질을 막기 위해서는 서비스의 제공자와 수혜자가 동등한 관계, 즉 시설의 운영자와 그 시설의 이용자가 아닌, 지역사회공동체의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맺어져야 한다. 다시 말해, 복지정책과 예산이 서비스 제공자인 시설의 운영자 중심으로 지원되는 것이 아니라 이용 당사자인 이용자들에게 권리로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근복적인 대안인 ‘탈시설 자립생활’로의 정책 전환이다.
하지만 수십 년을 이어 온 시설 수용 중심의 복지정책이 하루아침에 바뀌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을 토앻 복지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들의 문제는 국가의 책임이라는 것을 확실히 하고, 단기간에는 전환이 어렵더라도 최소한 사회복지시설 운영이 투명하게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 반드시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 그것이 핵심요구인 공익이사제의 도입이다. 관심의 끈을 놓아선 안 된다. 이대로 다시 도가니가 식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다. 도가니가 식기 전에 반드시 사회복지사업법을 개정하고, ‘탈시설 자립생활’ 실현의 단초를 마련해야 한다.
사회복지 사업법에 대해 알자.
사회복지사업법은 사회복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할 것을 목적으로 명기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사회복지법인 및 사회복지시설의 인권침해, 부당노동행위, 비민주성, 사적 이익 추구 등 회적 문제가 끊이지 않아 사회복지사업법을 개정하려고 하고 있다. 현재 탈시설의 원칙을 명기하고, 사회복지법인의 임원제도 등을 개선하여 사회복지법인 운영의 투명성과 개방성을 높이고, 민주적 운영을 도모하여 사회복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법 개정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사회복지가 권리로서보다는 시혜로 인식되고 있다. 국민의 삶의 질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사회복지가 시혜가 아닌 사회적 권리로서 인정되어야 한다. 모든 국민은 사회 경제적 지위나 성, 연령, 종교 등 어떤 이유로도 차별 받지 않고 품위 있는 생활을 유지할 권리가 있으며, 국가는 이를 보장할 책임이 있다. ‘인간의 권리를 보편적으로 보장하는 복지’인 인권복지가 확립될 때에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이학성 기자
인화학교 성폭력대책위 사무국장과의 인터뷰
인화학교 사태를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해결을 위해 앞장서고 있는 한 청년, 인화학교 성폭력대책위 사무국장 도연씨(30)를 만나 청년의 눈으로 장애인 차별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다.
Q. 인화학교 성폭력 문제는 처음에 어떻게 알려지게 되었나요.
A. 2005년 성폭력상담소에 상담이 접수가 되면서 처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어요. 당시 이노하학교에 통학하던 청각장애 학생이 인화원에서 생활하는 친구와 채팅을 하지 않았다면 또 그 채팅을 통화하는 장애학생의 어머니가 우연히 보지 않았다면 세상에 알려질 수 없었던 사건입니다. 시민사회 단체들이 심각성을 확인하고 기자회견을 해서 언론에 알렸어요. 이후 MBC <PD수첩>을 통해서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죠. 그 영향으로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국가인권위원회의 집권조사가 이루어지게 되었어요. 조사를 통해 가해자가 드러났고 피해자가 광범위하게 존재한다는 것, 다년간 수차례의 성폭력이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Q. 영화 ‘도가니’를 본 소감은?
A. 영화는 시사회에서 봤어요. 2005년 광주교육청 기자회견장에서 이 문제를 처음으로 세상에 드러낼 때에도 그 자리에 있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 당시에는 이 사건이 너무 상식 밖의 일이기도 하고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사건이기도 해서 피부에 잘 와 닿지 않았어요. 고아주에서 장애인 차별 철폐운동을 하는 주체로서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대한 인식은 있었지만, 실제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은 부족했거든요. 영화를 보면서 구체적인 폭력 상황이 어떤 것이었는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어요. 이 사건을 새롭게 체감하는 계기였어요.
Q. 영화라는 엔터테이먼트 매체를 통해 이렇게 이슈화된 사건은 없었던 것 같은데요.
A. ‘가해자를 처벌해야 한다.’ ‘재조사해야 한다’, ‘저런 나쁜 놈들’ 등 영활르 본 많은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분노했어요. 영화를 통해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나 공소시효, 아동 성폭력에 대한 문제를 새롭게 되새길 수 있었어요. 하지만 이와 유사한 인권 유린이 구조적으로 발생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떤 것을 바꾸어야 하는 가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것 아닌가요? 그러나 영화가 거기까지는 제시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영화가 그런 것을 목표로 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도 영화라는 매체가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영향력을 <도가니>는 보여줬고, 딱 그 정도라는 한계도 우리에게 보여준 것 같아요. 설경구씨가 나왔던 <박하사탕>도 사실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되짚어볼 것이 굉장히 많았는데, 그런 문제는 주목받지 못하고 이슈가 되지 못한 것은 어쩌면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한계가 아닌가 생각해요. 하지만 <박하사탕>때와 달리 지금은 실시간으로 빠르게 소통하고 퍼져나가는 SNS라는 수단을 활용할 수 있는 시기라는 점과 현재까지도 이 문제를 포기하지 않고 활동하는 ‘인화학교 성폭력대책위’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영화 <도가니>의 영향을 더욱 확대하는 계기로 작용했다고 생각해요.
Q. 최근에 천막을 시청 앞에서 터미널로 옮긴 이유는 무엇인가요.
A. 10월 5일에 광주시청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했어요. 10월 7일에는 국무총리실에서 우석법인 인가를 취소하겠다는 발표를 하고, 10월 10일에는 광주시교육청에서 ‘인화학교 위탁 취소’를 하고 광산구청에서 ‘인화원 시설 폐쇄’를 우석재단에 통지했어요. 1차적인 행정절차 밖에 이루어지지 않았는데도, 언론에서나 사람들은 이제 인화학교 문제가 해결된게 아니냐고 얘기해요. 더 많은 시민들을 만나 문제를 알리기 위해 천막을 치어 아펭서 터미널 앞으로 옮기고 서명운동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지난주 토요일 (10월 15일)에 광주 시내에서 서명운동과 촛불문화제를 열었는데, 소나기가 오고 추운 날씨였는데도 서명운동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반응이 뜨거웠어요. 농담으로 번호표를 뽑고 기다려달라고 할 정도였죠.
Q. 특수학교에서 공부하는 장애학생들의 교육 환경이 궁금하네요.
A. 저의 경험을 예로 들면, 고등학교 올라갈 때 인문계냐 실업계냐를 선택할 수 없었어요. 시각장애 특수학교는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안마, 침술, 해부생물학 같은 안마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과목들로 대부분의 커리큘럼이 구성되어 있어요. 일반학교에서 비장애 학생들이 배우는 국,영,수 같은 과목의 비중은 굉장히 낮아요. 대학을 가기 위해 배워야 하는 수업 과목 자체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어요. 가보시면 알겠지만 특수학교들은 거의 외진 곳에 있어요. 일단 나가기가 쉽지 않고, 나간다 하더라도 버스르르 타고 왔다 갔다 하는 게 불편하기 때문에 비장애인 친구들을 만날 일도 별로 없어요. 교우관계나 인간관계도 굉장히 범위가 좁을 수밖에 없죠.
Q. 농아인 학교는 그 차이가 더 클 것 같아요.
A. 일단 의사소통이 되지 않기 때문에 100%, 아니 200% 쯤은 더 힘들지 않을까요? 물리적인 공간의 괴리감뿐만 아니라 언어적인 장벽들이 있기 때문에 더 크겠지요. 실제로 인화학교가 광주 시내에 있었더라도 인간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에요. 비장애인들이 청각장애인들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들을 배우지 않는 한, 비장애인들이 달라지지 않는 한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Q. 현재 장애 학생교육에 대해서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나요?
A. 시각장애 학생들은 시각장애 학교에 보내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은 옳지 않아요. 지금까지는 청각장애, 지체장애, 지적장애 등 유형별로 다 특수학교를 만들어서 밀어넣는 식이었죠. 물론 지금은 특수학급 혹은 통합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일반학교에 장애학생이 통학할 수 있게 하는 정책이 일부 진행되고 있지만, 장애학생들은 신체적인 속상 때문에 필요로 하는 개별적인 교육 지원이 존재하는데, 이것들은 충족시키지 않고 단지 물리적인 공간만 특수학교에서 일반 학교로 옮겨 놓으면 제대로 공부할 수 없어요.
Q.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이 이루어지게 되면 어떤 성과가 생기게 되나요?
A. 사회복지법인에 공익 이사제 도입을 통해 최소한의 관리, 감독, 감시 역할을 할 수 있을 거에요. 한나라당 법안이 통과되느냐, 도가니대책위 법안이 통과되느냐에 따라 나타나게 될 결과는 차이가 있어요. 도가니대책위 법안이 온전히 통과되면 장애인 권리옹호시스템을 도입할 수 있어요. 사회복지 사업의 목적도 시설 중심이 아니라 재가 서비스 중심으로 바뀌게 되구요. 트위터 계정 중에 홈리스복(@Homeless_bot)이라고 있어요. 홈리스 봇이 가끔 날리는 맨션 중에 이런 맨션이 있어요. “홈리스 복지의 발전이 ‘홈리스 시설’의 발전을 의미하는 건 아니야. 오히려 그 반대가 아닐까?” 100%로 공감합니다. 장애인 복지시설이 아무리 좋아지고 서비스 질이 좋아진다고 해도 그런 발전이 곧 장애인 복지의 발전을 의미하는 건 아니에요. 현재 복지시설의 발전은 사회로부터 일정 정도의 공간적 분리를 전제로 하고 있어요. 이 말은 장애인들이 그런 시설에 머무르게 되면 사회로부터는 점점 존재가 잊히게 된다는 말이에요. 시설에 몇 십억, 몇 백억이 들어가도 좋으니 시설을 정말 좋게 만들어서 장애인들은 그 공간에서만 머물게 하면 좋겠다는 얘기는 굉장히 무서운 얘기예요.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이 장애인 권리 옹호시스템 도입과 재가 서비스 중심의 서비스 사업이 되어야 한다는 목적성을 가지고 통과된다면 장애인 복지뿐만 아니라 홈리스 복지 차원에서도 굉장히 큰 진전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Q.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분들에게 전할 메시지가 있다면?
A. 자타를 구분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들 문제라고 구분하는 순간 이 문제는 다른사람의 문제가 되죠. 인화학교 사넉과 내 문게가 이어져 있다는 고리를 찾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잊힐 수 밖에 없고 내 문제에서 멀어질 수 밖에 없어요. 한순간의 분노와 한 순간의 정의감으로는 세상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 분노하고 있는 문제가 내 삶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깨달아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왜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움직이는 지를 고민할 수 있는 자신만의 계기를 찾았으면 좋겠어요.
Q. 당신은 언제부터 장애인 차별 철폐 운동을 시작했나요?
A. 고등학교를 대전에 있는 시각장애 특수학교로 다녔고, 대학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했어요. 스물한 살 때인 2001년에 장애인 차별 철폐 운동을 시작하였어요. 2001년은 오이도역 장애인용 리프트 추가 참사로 ‘장애인 이동권’ 문제가 굉장히 큰 이슈가 되었던 때이기도 해요. 시각장애를 가진 나에게 장애인 차별 철폐운동은 자신의 지체가 주체일 수밖에 없는 그런 운동이에요.
+ 도가니대책위와 친해지기
도가니대책위 공식 트위터 @2011dogani
인화학교 성폭력대책위 다음카페 cafe.daum.net/inhwa815
도가니대책위원회 블로그 dogan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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