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銀行 ‘끝장 수사’로 검찰, 명예회복 안간힘
청와대ㆍ여권, ‘권력의 칼’ 중수부 폐지ㆍ존속 분분… 정치권 ‘눈의 가시‘
국회도 검찰과 정면대결 나서 발끈한 김준규 검찰총장 固守 위해 총력전
국회 사법개혁특위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수사권 폐지에 합의하자 정치권과 검찰의 공방전이 가열되고 있다. 검찰총장이 직접 반대 성명을 발표한데 이어 청와대도 중수부 폐지 반대 입장을 표명하면서 양측의 입장이 대립 국면을 맞았다. 특히 김준규 검찰총장은 중수부 폐지 반대와 더불어 저축은행 사태를 끝까지 수사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어 정치권에 대한 검찰의 반발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6월 3일 국회 사법개혁특위의 합의는 검찰의 독립성 유지에 대한 일대 타격이다. 권력형 비리 수사의 효율성 문제를 두고 정치권이 갑론을박하는 과정에서 청와대가 사실상 폐지 반대 입장을 표명하면서 사태가 의외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중수부, 권력층 인사 처단 ‘성역 없는 수사’ 대명사
논란이 되고 있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공직자 비리수사처로 공안부와 함께 검찰의 양대 중핵을 이루어온 핵심 부서이다. 검찰총장의 직할 수사조직으로 청와대나 검찰총장의 하명사건 수사를 담당해왔다. 중수부는 지난 1949년 12월 검찰청법에 중앙수사국 설치규정이 생기면서 탄생했다.
중수부의 전신은 1961년 세워진 대검 중앙수사국으로 일반 경제범죄와 공안 사건을 취급하다 다음해 2월 수사국으로 개칭된 뒤, 1981년 대검 중수부가 창설됐다. 중수부는 기본적으로 특수수사 전문조직으로 총장의 하명사건을 처리하는 부서다. 대통령령인 검찰청 사무기구에 대한 규정은 대검찰청의 다른 부서가 형사, 마약범죄, 공안사건 등에 관한 지휘감독업무를 수행하게 되는데 중수부는 검찰총장이 직접 명하는 범죄사건을 수사한다.
또 중수부 아래 중앙 수사 1과, 중앙수사 2과, 첨단범죄 수사과를 설치하고 수사기획관을 둬 중수부장을 보좌하도록 했다. 다만 수사기획관이 수사업무의 기획 및 조정 업무를 하도록 했지만 이마저도 총장이 정하는 업무에 한해서다. 즉 총장의 직할 조직이자 대검찰청의 고유사무와는 다른 부서가 바로 중수부인 것이다.
중수부는 그동안 이철희 ․ 장영자 부부 어음사기 사건. 율곡비리,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사건과 한보 사건, 김현철 비리 사건, 이영호 게이트 등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사의 획을 긋는 굵직한 사건들을 맡아왔다. 이처럼 중수부 수사는 그동안 내로라하는 권력층 인사들을 처단함으로써 ‘성역 없는 수사’의 대명사로 각광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표적사정 시비를 불러일으키면서 ‘정치검찰’의 오명을 받기도 했다. 특히 현재 권력은 임명권을 내세우며 검찰을 지배하고 과거 권력에는 중수부의 매서운 칼날이 어김없이 날아들었다고 자평한다.
김 총장, 금융권력 ’모피아‘ 부패가 ’문제’ 지적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자 강원랜드 등 공기업 비리 수사로 전 정부 인맥이 수사 대상에 올랐으며 세종증권 매각과 태광실업 회장 관련 수사가 시작됐다. 이 사건은 정관계 로비 사건으로 확대되면서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고 이로써 중수부는 개점휴업 상태를 맞게 된다. 하지만 이후 C&그룹 사건으로 호남기업을 집중 타깃으로 삼았으며 특히 최근 부산저축은행을 비롯한 저축은행 비리 수가가 진행되면서 중수부 폐지론과 묘하게 맞물리는 상황이 됐다.
이번 저축은행 비리 수사의 총감독이 바로 김준규 검찰총장이다. 검찰 안팎에서는 임기 2개월여를 남긴 김 총장이 작심하고 마지막 작품을 만들려 한다는 분석이다. 김 총장이 취임한 2009년 8월 대검 중수부가 노 전 대통령 서거 여파로 잠시 주춤했지만 김 총장의 확고한 의지에 따라 오랫동안 이번 수사를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김 총장의 지시에 따른 검찰 내부의 오랜 자료 축척에서 나온 것이다.
저축은행 관련 수사가 금융부패에 대한 김 총장의 오랜 관심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해석이다. 실제로 김 총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측근들에게 “정치권이 다 무너져도 금융권력은 건재하다”는 말을 해왔다. 검찰의 또 다른 관계자는 “언젠가 김 총장이 ‘정치권력의 부침과는 달리 금융권력 ’모피아‘는 건재하고 그 누구도 손을 못 대는 성역으로 남아 있으며 따라서 그 부패가 문제’라는 말을 한 일이 있다”고 말했다.
저축은행 수사 통해 정치권 압박 암묵적 ‘시위’
저축은행 수사가 그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배경에는 김 총장 특유의 스타일도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금융부패’는 지금까지 수사당국이 제대로 손을 댄 일이 없었고, 건드렸어도 모두 실패했던 게 사실이다. 김 총장은 대검 중수부에 “이런 성역과 부패를 척결해야 한다”고 주문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정치권이 추진해온 ‘검찰개혁’안에 강하게 반발해온 김 총장이 임기를 두 달가량 앞두고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부산저축은행 압수수색을 신호탄으로 시작된 수사는 중수부 산하 중수1․ 2과와 첨단범죄수사과(옛 중수3과) 전력이 총동원 됐다. 일선 검찰 가운데 수사력과 집중력이 가장 뛰어난 검사들이 ‘올인’하는 것이다. 중수 1과는 부산저축은행의 불법대출, 대주주 비리 등 이번 사건의 본류를 수사하는 부서는 중수 2과, 첨단범죄수사과는 특혜인출 조사를 담당하고 있다.
이같이 마지막이 될 수사에 혼신을 다하고 있는 김 총장과 중수부에 ‘폐지’라는 청천벽력 앞에 강력하게 대응하고 나섰다. 대검찰청은 사개특위의 결경이 정해진 이후 김준규 검찰총장이 긴급 소집한 간부회의에 대검 과장급 이상 간부 28명이 참석해 2시간여 동안 중수부 폐지와 관련한 논의를 벌였다. 또 회의 직후 김 총장이 직접 성명을 발표하는 등 검찰 조직의 대대적인 반발을 천명하기도 했다.
김준규 검찰총장은 중수부 폐지와 맞물려 논란이 되고 있는 저축은행 수사와 관련해 “검찰은 흔들리지 않고 수사에 매진하겠으며, 평소 소신대로 향후 검찰은 수사로 말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작은 부패는 처벌하고 커다란 부패는 지나쳐야 될지도 모르는 미래의 상황은 용납하기 어렵다“며 중수부 폐지의 부작용을 강조했다.
중수부 수사권 폐지 검찰 정치적 독립성 강화
김 총장의 말처럼 검찰은 기본적으로 정치권 등 외부로부터 바람막이가 되는 중수부가 있기 때문에 그나마 검찰 수사가 독립성을 유지한다고 자부하고 있다. 검찰 최고의 지위에 오른 검찰총장이 지휘하는 중수부만이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수사를 진행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반면 승진이나 영전을 의식해야 하는 간부가 지휘하는 다른 수사부서는 독립성에서 자연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치권은 중수부가 과연 중립적이었느냐고 회의적이다. 민주당 박영선 정책위원장은 “이명박 정부 들어 중수부가 수사한 사건을 살아있는 권력 대신 과거 권력을 죽이려 한 것뿐이다”고 비판했다. 한나라당 한 의원도 “중수부가 과연 완벽하게 정치적 중립을 지키면서 수사를 했느냐는 국민의 의혹이 과거 정권에서부터 있어왔던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정치권은 그런 점에서 중수부 수사권 폐지는 검찰의 정치적 독립성을 강화하려는 것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특히 민주당은 주요 국가에선 검찰총장이 직접 수사권을 갖지 않으며 국세청장도 직접 세무조사를 지휘하진 않는다며 대검에 집중된 수사권을 지방검찰청에 돌려보내는 것이 검찰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일선 검찰조직의 역량만으로는 권력형 비리 수사에 역부족이라고 탄식한다. 검찰관계자는 “중수부는 검사 4~5명씩으로 구성된 특수부와는 구성부터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중수부는 일선 지검부장검사급인 과장들도 직접 수사를 하고 소속 검사들도 대부분 특수수사 능력을 인정받은 10년차 이상의 중견들이기 때문에 한 차원 높은 수사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 중수부는 총장의 직접 지휘만 받게 돼 있어서 상부 보고단계를 밟는 일선 지검보다는 의사 결정 속도가 빠르다. 범죄가 갈수록 지능화되고 복잡해지는 현실 속에서 강력한 수사조직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검찰의 주장이다.
폐지 반대 신중한 청와대... 개혁의지 실종
지난 6월 6일 중수부 폐지에 반대하고 나선 청와대의 입장은 정치권과 다르다. 이날 임태희 대통령실장 주재로 수석비서관회의를 열고 대검 중수부 폐지 입장을 정리한 청와대는 중수부 문제에 대해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임 실장은 회의 직후 중수부 폐지에 반대한다는 참모들의 입장을 보고했으며 이명박 대통령도 이에 동의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중수부를 폐지하면 권력은 누가 견제 하겠느냐”면서 “야당이 생각하는 공직자비리 수사처나 여당이 고려중인 서울중앙지검 내 별도 수사조직 설치는 전국단위 수사 등에서 여러 가지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청와대의 이 같은 논리는 김 총장이 중수부 폐지에 반대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청와대는 그동안 중수부 폐지 문제에 대해 “국회에서 논의해야 할 문제”라며 공식 입장 표명을 삼갔다. 하지만 최근 국회 사법 개혁특위 소위에서 중수부 폐지를 합의하면서 이 문제가 급물살을 타자 공식 입장을 밝히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국회의 입장이 중수부 폐지로 쏠리는 것을 막아야 할 다급함과 필요성이 커진 탓이라 볼 수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중수부 폐지는 ‘거악’을 잠들게 하는 조치”라며 “여론도 중수부 폐지에 대해 좋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국회 논의 과정에서 자연 소멸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청와대의 중수부 폐지 반대는 우선 지난 3월 국회 차원의 논의가 진행돼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입장 표명을 삼가더니 이제 와서 입장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문제로 지적된다.
청와대의 개입은 결국 6월 임시국회에서 여야 대결만 부추긴 결과를 가져왔다. 무엇보다 중수부 폐지론이 검찰의 정치적 편향성 시비와 견제를 받지 않는 검찰 권력에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을 감안하면 청와대의 중수부 폐지 반대는 검찰개혁 의지가 없음을 증명한 셈이다. 여전히 검찰에 대한 직접 통제로 정권의 통치수단화 하겠다는 의도가 잠재한 것이라는 비판을 면할 길 없다.
청와대의 폐지 반대 입장 표명은 여권의 분열 사태마저 불러왔다. 특히 최근 한나라당 신주류로 떠오른 소장파 그룹의 정태근 의원은 6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검찰 개혁이 국회에서 논의될 때 일언반구도 없던(청와대)분들이 이제 와서 중수부 폐지 신중 검토 의견을 냈는데 이게 온당한 처사냐”고 반문했다.
이학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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