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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길거리 ‘묻지마 살인’

이학성 기자 2011. 6. 17. 14:52

                           충동・분노・현실 불만... ‘묻지마 살인’ 급증

                                           술김에 불만에 연고 없는 ‘살인’ 4년새 2배 증가 "경쟁사회 낙오 증가 탓"

 

 우리사회의 병폐인 ‘묻지마 관광’에 이어 ‘묻지마 살인’이 급증하고 있어 길거리를 지나기가 무섭다. 지난달 3일 서울 광진경찰서는 흰색 티와 검정색 운동복 바지차림의 살인 피의자 이 모(52)씨를 체포했다. 피의자는 전날 저녁 6시경에 광진구 구의동의 '먹자골목' 부근에서 지나가던 백화점 직원인 유 모(32)씨를 흉기로 마구 찔러 현장에서 살인을 자행한 혐의다. 심문을 받는 그의 눈빛은 오히려 ‘죄책감’도 없고 경찰의 시선도 피하지 않았고, 마치 자신의 얘기가 아닌 듯 범행을 자백했다.

 

출퇴근 시 발생 높아 시민들 '표적' 두려움

 그는 "미안하다. 하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었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지난 3월에는 충북 청주에서도 고 모씨가 만취해 길을 가다 알지도 못하는 행인 김 모(36)씨를 폭행, 목 부분을 2차례 흉기로 찌르다 살인미수혐의로 잡혔다. 그는 경찰 심문에서 "별 이유는 없다. 그냥 술 마시고 화가 나서 아무나 죽이고 싶었다."고 진술했다.

2010년 12월 박 모(23)씨도 컴퓨터 게임을 하던 중, 부엌칼을 집어 들고는 밖으로 나가 면식도 없는 이웃에 사는 남성을 살해하고 "게임에서 칼싸움하다가 갑자기 사람을 죽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맨 먼저 보는 사람을 죽이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최근 울컥한 마음에술 마시고 기분이 나빠서, 자신과 연고도 없는 사람을 살인하는 '묻지마 살인'사건이 급증하고 있다. 그것도 대로에서 자행되고 있는데다 특히 출퇴근 시에 발생이 높아 시민들이 '표적'이 될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다.

 

소심한 성격ㆍ심약한 성격 소유자 ‘폭발’

 대검찰청의 '2010년 범죄분석'에 따르면 '우발적' '현실불만' 등이 이유인 묻지마 살인 사건은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다. 2005년 363건(전체 살인사건 37%)에서 2008년 532건(53%), 2009년 656건(54%)으로 늘어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묻지마 범죄가 증가하는 것은 치열해지는 경쟁과 사회적 변화에서 낙오한 사람들이 증가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묻지마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는 대부분 내성적이거나 나약한 성격을 가진 경우가 많다"며 "이들은 경쟁에서 낙오할 경우 자신의 불행을 '남의 탓'으로 돌리며 억눌러 왔던 감정을 폭발시킨다"고 말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성폭력 범죄자만 대상으로 하고 있는 심리 치료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 충동과 분노를 제어하지 못하는 범죄자들에게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 중국 일본 등도 ‘무차별 살인’ 골치

 총기소유가 허가된 미국도 마찬가지다. 일본, 유럽 또한 선진국들도 '묻지마 살인'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경제발전으로 빈부 격차가 벌어진 중국도 최근 들어 발생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중국 남방일보(南方日報)는 5일 "지난 2일 오전 광둥성 선전시 한 극장 앞에서 펑(憑·25)모씨가 갑자기 행인들에게 달려들어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러 2명이 숨지고 5명이 병원으로 실려 갔다"고 보도했다. 지난 4월에는 랴오닝성 안산에서 30대 남성이 사업 실패를 이유로 자신의 부인, 아들, 아버지 등 가족과 종업원 모두 10명을 살해해 체포되기도 했다.

미국의 경우 총기난사가 대표적이다. 지난 2월 미국 뉴욕에서 막심 겔만(23)씨가 '어머니의 차를 몰지 못하게 한다'는 이유로 양아버지를 죽이고, 전 여자 친구 집까지 찾아가 전 여자 친구와 그녀의 어머니를 살해했다. 2009년 3월에는 미국 뉴욕주 빙햄튼에서 40대 베트남계 남성이 영어 학원 건물에서 총기를 난사한 뒤 자살했다. 14명이 숨지고 4명이 중상을 입었다. 중국에서는 지난해 3월 중국 푸젠(福建)성 난핑(南平)시에서 쩡민썽(鄭民生·42)씨가 집 인근의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칼을 휘둘러 초등학생 8명이 숨지고, 5명이 크게 다쳤다.

그는 "직장을 잃고 생활이 어려웠는데 아이들을 보니 갑자기 화가 났다"고 말했다. 일본도 묻지마 범죄가 자주 발생한다. 2008년 6월 일본의 대표적인 전자상가인 아키하바라역 인근에서 가토 도모히로(28)씨가 트럭을 몰고 인도로 돌진한 뒤 흉기를 행인들에게 휘둘러 7명을 죽이고 10여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그는 범행 동기에 대해 "사람을 죽이기 위해 갔다. 누구라도 상관없었다."고 말했다

이학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