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학성 취재부장 컬럼 "세계를 완전히 지배한 김연아"

이학성 기자 2011. 6. 7. 11:46

 기자수첩 ㅣ 이학성 취재부장

 

"여자피겨스케이팅의 세계를 완벽히 지배한 김연아"

 

오랫동안 동서양의 차이와 국가별 부의 차이가 극명하게 반영돼 왔다. 체형·체력과 문화적 배경에서 서양인에 비해 불리한 아시아권은 감히 세계 정상에 도전할 엄두조차 못 냈다.

훈련시설과 장비 등 기본 인프라를 감당할 경제력이 없는 나라들도 피겨 스케이팅을 꽃피우기 어려웠다. 당연히 역대 여자 싱글 금메달리스트는 유럽과 북미 선수 일색이었다. 2006년 토리노 올림픽에서 일본 선수가 아시아권 첫 우승을 기록한 게 고작이었다.

일본에 비해 선수층이나 훈련여건이 한참 처지는 우리나라가 지난 밴쿠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것은 사실상 ‘기적’ 이나 마찬가지다.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피겨 스케이팅의 선구자들이 페어연기를 연습하다 ‘풍기문란’ 죄로 경찰에 연행되던 나라였다. 게다가 김연아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기로 여자 피겨 스케이팅의 세계를 완벽히 지배했다” 는 극찬까지 받고 있다.

 

 우리 사회는 그녀의 우승을 계기로 ‘새로운 시작’ 을 모색해야 한다. 자신감과 자부심을 갖고 저마다 자기 분야에서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펼쳐야 한다. 마침 영국의 한 신문도 ‘한국 더 이상 약자가 아니다’라는 칼럼을 통해 “늘 중국과 일본에 치이고 세계로부터 무시당한다고 생각해오던 한국이 경제·국제정치적으로 성장해 피해자·약자의 지위를 벗어나게 됐다” 고 평가하지 않았는가! “숙원이던 부국의 지위에 들어서는 단계” 라고 하지 않았던가! 김연아의 찬란한 성취는 자신의 땀과 눈물, 가족과 코치의 보살핌, 빙상계의 격려, 국민의 성원이 합쳐진 결정체다.

여섯 살 때 처음 스케이트화를 신어 본 김연아는 14년 만에 ‘피겨 여왕’ 으로 등극하기까지 빙판 위에서 수만 번의 엉덩방아를 찧었다. 지난 2006년 12월 그랑프리 파이널에는 고관절 부상으로 밀려오는 통증을 진통제를 맞아가며 참고 출전해 일본의 아사다 마오를 제치고 우승했다. 김연아가 목에 건 금메달은 한국이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에서 처음으로 딴 메달이다.

 

 한국은 1988년까지 겨울 올림픽에서 노 메달이었다. 겨울 올림픽은 헝그리 스포츠와 달리 국부가 어느 정도 받쳐줘야 세계 수준의 선수를 양성할 수 있는 분야다. 피겨 불모지에서 김연아 라는 대스타의 싹을 틔운 이가 어머니 박미희씨다. 박 씨는 여섯 살 딸의 재능을 알아보고 모든 시간과 노력을 딸에게 쏟아 부었다. 어머니의 헌신과 딸의 의지에서 우리 민족 특유의 저력과 끈기를 본다.

지난 5월 1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2011 ISU 세계 피겨스케이팅 대회에 한국인에게는 다소 아쉬운 김연아의 은메달에 속은 상하겠지만 그래도 긴 공백에서 은메달이라는 수확을 챙긴 그녀가 시상대에서 흘리는 눈물만큼이나 그녀는 아쉬움에 찼다. '안도 미키'의 연기를 감동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김연아의 연기와 음악, 의상에는 대단한 한국인의 혼을 깨우는 뭐가 들어있었다. 그녀가 팬들을 위해 선물한 그 정신을 고스란히 팬들은 느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