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앙드레 김 '별세' 패션계의 큰별 하늘로 올라

이학성 기자 2010. 8. 13. 13:48

 

 

 

 

                                                           ‘패션계의 큰 별 하늘로 올라’

                                                패션계의 리더인 앙드레김 사망, ‘75세 인생 패션쇼’ 막 내리다

 

 한국패션의 거목 한국대표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김이 지난 12일에 사망소식이 들려와 안타까움과 충격이 전해지고 있다.

 

앙드레김은(본명 김봉남) 1935년 8월 24일생으로 경기도 고양시에서 태어난 고인은. 신도 초등학교와 한영고등학교를 졸업 후 1962년에 패션디자이너로 데뷔, 그해 소공동에서 살롱 앙드레라는 의상실을 열러 국내최초의 남자디자이너로서 당당하게 자리를 잡았다. 이후 그는 1966년 파리에서 한국인 최초로 패션쇼를 개최하였고, 1980년도에는 미스유니버스 대회 주디자이너로 선발, 97년도와 08년도에 문화훈장을 받는 등 2009년 11월부터는 서울 강남구 홍보대사로 활동해온 국내최고의 패션디자인너인 큰 별이 하늘로 올랐다. 서울 종로구 서울대 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브리핑을 통해 아들 김중도씨는 “2005년 5월 처음으로 대장암을 발견하였고 그 후 꾸준하게 항암치료를 받아왔지만 저번날 12일에 패렴증상으로 입원 후, 증세가 악화돼 중환자실로 옮겨 한 달간 누워계시다가 어제 오후 7시에 별세하셨습니다” 며 “발인은 16일 오전 6시로 장례는 5일장에서 변경해 4일장으로 치러지며, 장지는 천안공원묘원으로 확정됐다.”고 말했다.

앞서 앙드레김은 지난 7월 22일 건강상태가 급격히 악화돼 서울대학병원 내과계 중환자실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다. 국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쳐온 패션계 거장 앙드레김은 몇 해 전부터 고령으로 인한 건강 악화설이 여러 차례 나돈바 도 있다.

한편 고인의 장례식을 추모하기위해 많은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빈소를 찾은 수많은 정치계 인사들과 연예인 김제동, 윤도현, 이상용 또한 빈소 앞에서 심한 오열을 한 김희선 등 연예인들 또한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수많은 패션쇼를 진행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었던 앙드레김,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그의 웃음과 작품들 그리고 그동안 발굴한 패션디자이너인 제자들이 그가 걸어왔던 길을 영원히 만들어 줄 것이다.

                                                                                                                                                                                        이학성 기자 

 

                   

                                  고인의 장례식을 추모하기위해 많은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빈소를 찾은 수많은 정치계 인사들과 연예인들

 

 

                                                                                              패션 마에스트로 앙드레김

 

  최근 미국 뉴욕타임즈와 런던의 헤럴드트리뷴은 앙드레김을 ‘한국패션의 영원한 목자’, ‘한국 패션의 선구적 개척자’로 묘사했다. 다른 기사에서는 그를 ‘살아있는 신화(神話)’라 했다. 목자, 개척자, 신화에 따라다니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앙드레김에겐 어쩌다 찾아오는 행운이 아니다. 세상을 독창적으로, 불타는 열정으로 살아온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씌워지는 고귀한 왕관이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이집트 피라미드 앞에서 패션 디자이너로는 세계 최초로 패션쇼를 열었던 그가 2006년 12월에는 역시 불가사의로 꼽히는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사원에서 세계 최초로 패션쇼를 열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불가사의’와 ‘앙드레 김’은 운명적 인연처럼 어울린다. 그는 이렇게 세계의 패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앙드레 김’은 이제 더 이상 패션 디자이너로서 개인의 이름이 아니다. 그는 우리의 모든 산업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고부가가치 상품의 이름으로 종횡무진하는 한국의 최상급 대표 브랜드다. 골프웨어, 아동복, 이너웨어, 코스메틱, 아이웨어, 주얼리, 홈패션, 라이팅, 도자기 등등 브랜드 라이선스를 확장해가고 있는 ‘앙드레김’에겐 끊임없이 다양한 라이선스와 브랜드 제휴 제의가 줄을 잇고 있다.


삼성물산은 앙드레김 아파트를, 삼성전자는 앙드레김 가전을, 그리고 국민카드는 앙드레김 카드를 최상급 ‘스타’ 제품으로 내놓고 있다. ‘앙드레김’은 이제 의상으로만이 아니라, 거실에서 부엌에서 집에서 그리고 지갑 속에서 즐겁게 만날 수 있게 우리의 라이프스타일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다. 그는 이렇듯 고품격 생활혁명을 주도하는 브랜드 신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앙드레김은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출발 자체가, 그리고 그의 작품세계와 삶의 여정이 그대로 드라마틱한 신화이다.


1962년 혜성처럼 등장한 앙드레김은 국경과 시대, 유행의 한계를 초월한 독창적 작품세계와 차원 높은 예술성으로 세계인의 가슴에 신선한 충격을 던지기 위한 힘찬 행진을 시작한다. 아직 한국이 세계화를 준비하지 못하고 있던 시대에 앙드레김은 홀로 외롭게 세계에 한국을 알리러 나선 것이다.


1966년 파리에서 최초의 해외패션쇼를 가졌을 때 ‘르 피가로’지는 그의 패션쇼를 ‘선경(仙境)의 마술’ 이라고 표현했다. 그만의 독창적인 언어와 손길로 지휘하고 그려내는 그의 패션쇼는 머리끝에서 가슴까지를 완벽하게 지배하는 마법의 성 (城)에 다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의 패션쇼를 보면 위대한 문학작품이나 명화(名畵), 혹은 명곡을 만났을 때처럼 극치의 예술만이 선사하는 영혼의 떨림을 체험하게 된다.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 가와바다 야수나리씨가 그의 패션쇼에 극찬을 보낸 이유가 거기에 있다.


애틋하고 아련한 그리움에 가슴을 어루만지다보면 뜨거운 정열의 박동이 용솟음치고, 화려한 유혹에 취하다 보면 지고지순한 사랑에 감동하게 되는, 앙드레김의 패션쇼는 마침내 손끝에 이르러 뜨거운 갈채를 쏟아내지 않을 수 없는 한편의 대서사시요 완벽한 종합예술의 절정이다.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애절한 그리움을 남기는 꿈의 파노라마다. 국경을 초월하고 시공을 초월하는, 인간이 영원히 동경하는 환상의 축제다.


그래서 세계 각국에서 패션쇼가 열릴 때마다 세계 유수의 매체와 관객들은 뜨거운 찬사와 환호를 보내고 있으며 세계 올림픽위원회는 수회의 올림픽에 그를 특별 초청했고,이집트 피라미드 앞에서 열린 패션쇼에는 수잔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 영부인이 이례적으로 참석하기도 했다.

이태리 대통령과 프랑스 정부는 그에게 귀한 훈장을 수여했고, 샌프란시스코 시장은 두 번씩이나 ‘앙드레김의 날’을 선포하기도 했다.


이렇게 그는 지난 40여년간 세계 각국에서 가진 패션쇼를 통해 우리 민족문화의 우수성을 당당하게 세계에 알린 명실상부한 세계적 패션 아티스트다.


앙드레김의 작품에는 그의 예술성을 더욱 존귀하게 빛내주는 영원한 생명의 향기가 있다. ‘유니세프 친선대사’라는 직함이 너무나 어울리는 따뜻한 인간애가 바로 그것이다. 해마다 유니세프 패션쇼 등 여러 자선 행사를 통해서 그는 조용히 자선을 실천하고 있다.


한편 패션 디자이너로는 최초로 2004년부터 ‘베스트 스타 어워드(BEST STAR AWARD’를 만들어 매년 우리나라 대중문화예술의 발전에 기여한 스타들을 직접 선정, 그들에게 격려와 갈채를 아끼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자기만의 작품세계에만 침잠하는 예술인이 아니라 함께 어울리면서 우리 대중문화예술의 지평을 활짝 열어가는 ‘우정의 예술인’으로서 인간적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만날 때마다 사라질 줄 모르는 푸르른 젊음과 식을 줄 모르는 뜨거운 열정이 물씬 느껴지는 앙드레김. 그래서 우리는 결코 끝나지 않을 신화와 전설의 중심에 그가 우뚝 서 있으리라는 것을 가슴으로 예감케 된다.


앙드레김은 2007년 한국언론인연합회가 수여하는 제 7회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단순한 패션디자이너가 아니라 선구적이며 모범적인 문화예술인으로, 민간문화외교사절로 살아온 앙드레김의 삶의 궤적을 살펴보면 그는 진정 ‘자랑스러운’ 한국인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