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민과 불우이웃 헌신... 화합· 상생경영의‘달인’
엄격한‘정직· 친절· 언행일치’솔선수범 지역경제 발전기여
26년간 2천여 명 도움 손길... '음지에 사는 이의 어버이' 칭송
"군포 주민들과 화합의 정을 나눌 수 있다면 이보다 감사한 일이 없지요”라 말하는 군포새마을금고 백남규(白南圭) 이사장은 오늘날의 규모로 성장해 온데는 처음에 작은 부동산 사무실에서 출발했다. 현재는 본점(군포1동)과 당동지점(군포2동)·광정동지점(산본 중심가) 등 3개를 운영하는 견실한 새마을금고다. 경기도 군포시 지역경제의 요람이며 서민금고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백 이사장은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참지 못한다. 평생 2천여 명을 헌신적으로 도우며 살아온 그의 얼굴 표정은 밝다.
26년간 신념· 믿음을 바탕으로 지역발전에 일조를 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백 이사장은 새마을금고의 사회적 역할을 경제· 사회· 문화적 지위 향상과 지역 및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라 말한다. 이사장직을 26년간 역임하면서 13년을 비상근으로 일해 온 그의 저력을 통해 일궈온 군포새마을금고의 성공에는 직원들의 애정과 신념, 믿음이 컸다고 겸손히 밝히고 지역민을 위한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는 숨은 지역일꾼이다. 지금 13년째 상근이사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는 또“군포새마을금고는 지역 경제의 생명줄로서 근검절약을 통한 자금조성과 공동사업을 벌여온 지역민의 금고였기에 비상근으로 16년간 항상 정직한 경영, 꾸준한 신뢰와 철저한 여신관리, 특히 임직원의 회원들에 대한 애정과 금고를 사랑하는 열정이 만든 역작이다”고 술회한다.
지역민들에게 생활안정자금과 보장상품을 통해 서민생활 자립 및 안정적인 삶에 필요한 자금 대출해주는 군포새마을금고는 폰뱅킹, 인터넷뱅킹 시스템과 모바일뱅킹 서비스, 현금 IC카드 및 체크카드 발급, 365코너 등을 운영하고 있다.
1800천억 원대 자산 전국 59위... 이익 환원 강조
백 이사장은“1997년 IMF 당시 군포새마을금고도 역시 어려움이 많았다. 정상화까지 직원과 함께 고충도 컸다. 뼈를 깎는 노력으로 2005년 5백억이던 자산이 1천800억 원으로 늘었고, 향후 2천억∼3천억 원이 목표다.”고 밝히고 전국 1460개 새마을금고 중 1천억 원이 넘는 곳은 214개라 말하고 현재 59위를 마크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특히 지역사회 화합과 화목에 앞장서는 그는 직원들에게 오직 정직과 진실, 친절과 서비스 당부를 잊지 않는다.
전북 김제가 고향인 백 이사장은 철도공무원 생활 7년을 마감하고, 막노동에서 건설업까지 15년, 새마을금고 성공의 열매를 지역민에게 환원하자는 것이 그의 경영철학이다. 지역 불우이웃 2천여 명에게 26년을 한결같이 개인적으로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때로는 보증을 서줘 피해도 많았다. 그럼에도 묵묵히 모든 일을 감당해 온 백 이사장은 '음지에 사는 모든 이들의 어버이'로 불린다.
지금은 조그만 연립주택에서 산다고 한다.
그 동안 3천 쌍의 결혼주례를 선 그는, 하루에 6차례 한 적도 있는 덕망 높은 지역인사로 꼽힌다. 무엇보다 타향에서 지친 삶을 사는 향우들을 위해 호남향우회 창설을 주도하고, 지역 화합을 위해 팔도시민연합회 초대 회장을 자임하는 화합형 리더이다.
45년 군포역사 산증인...‘화합’덕목 강조
고향을 떠난 지 45년, 긴 세월을 군포와 군포새마을금고에 여생을 바친, 그는 군포 역사의 산 증인이다. 긴 세월 타향에서 삶의 여정을 걸어온 백 이사장은 부인과 2남 1녀를 둔 가장이다.
“가족보다 더 새마을금고와 지역민에 신경 쓰다 보니 가족에게 미안하죠. 금융업의 생명은 투명성이기에 언행일치와 오직 진실과 청빈함이 중요하다. 가정과 사회, 정치도 화위만복지원(和爲 萬福之原)이 근본이다. 곧 화합만이 만복의 근원이라는 말이다. 화목은 사심을 버리고 합리적, 긍적적 사고로 인간관계를 대화와 진실이 가슴에 와 닿을 때 샘물처럼 화합심이 생겨납니다. 또 순간적인 지혜로써 명예와 이익을 얻을 수도 있겠죠. 인간적 가치를 상실하지 않고 당당히 나간다면 최고의 명예요, 재물보다 귀한 것이라 생각합니다.”며 화목을 강조했다.
‘유음덕자 필유소명’새기며‘베품’최선
백 이사장은 지난 1980년 5ㆍ18 광주혁명 이전 45년 전에 고향을 떠나 지금의 군포로 이주했다.“당시 셋방 을 구하려 무려 7~8곳을 돌며 고생하거나 노숙을 하던 시절입니다. 저는 운이 좋게 1966년 서울 철도국 보선사무소에 취직해 그나마 방세 싼 곳을 잡았는데 그곳이 바로 군포다. 당시 제 박봉으로 자식에게 가난을 넘길 수밖에 없다고 판단, 7년만인 1972년 사직서를 내고 하루빨리 자립의 길을 찾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 3년 만에 대지 35평을 매입할 수 있어 그를 종자돈으로 15년간 건축업을 통해 상당한 재산도 축적했다. 건축업을 하다 만난 호남사람들로부터 도움도 받았고, 가까이 지냈지만 때론 타인의 박대로 인한 분노에 못 이겨 관청에 붙잡혀 고초를 겪기도 했다.”고 말하는 백 이사장은‘유음덕자 필유소명(有陰德者 必有昭名)’즉,‘덕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밝은 갚음이 있다’는 계명을 늘 가슴에 새기며 오늘도 하루하루 최선과 덕을 베푸는 삶을 걸어간다. 그러나 이 모두가 지역민과 금고 임직원 모두에 힘이었다고 그 공을 타인들에게 돌리고 있다.
취재 이학성 기자
프로필>
1939 전북 김제 출생
1966 서울시 철도국 7년 근무
1981 안양, 시흥시 호남향우회 창설위원장
1985 군포시 호남향우회장(제5,6,7,8,9,17,18대)
1985 군포새마을금고 이사장(제4,5,6,7,8,9,10,11,12대)
1987 경기도 호남향우회 연합회장 (1,2,3대 역임)
1989 군포, 의왕, 과천시 새마을금고 협의회장 역임
1991 평화통일 자문위원 역임
1996 새마을금고연합회 경기도지부 부회장
1997 새천년 민주당 중앙당 지방자치위원
군포새마을금고 내부모습
군포새마을금고 외부
공제 2,000억달성 기념행사
군포새마을금고 백남규 이사장의 자필 ▲ 혜이부지위정(惠而不知爲政) : 맹자왈 惠而不知爲政 “왕은 은혜로웠지만 정치 할 줄을 모른다” ▲ 유음덕자 필유소명(有陰德者 必有昭名) : 덕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밝은 갚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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