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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 대박코너 탄생 비하인드 스토리

이학성 기자 2011. 5. 30. 16:05

Entertainment l ‘개그’ 대박코너 탄생 비하인드 스토리

 

 

 

 

 

                          개그맨들 생활 속 아이디어 발굴 '이구동성'

                                 드라마-영화 시청 중 영감(?)... ‘개콘’ 꽃미남수사대도 우연히 탄생한 코너

 

 

 개그맨들의 스케줄은 보이는 스케줄과 보이지 않는 스케줄 두 가지로 나뉜다. 녹화와 인터뷰 등 공식적인 스케줄이 ‘보이는 스케줄’이며, ‘보이지 않는 스케줄’은 아이디어 회의를 비롯한 아이디어 검사와 리허설 등이다. 사람들의 눈에 띄는 일정은 아니지만 개그맨들에겐 ‘보이지 않는 스케줄’이 훨씬 중요할 때가 많다. 아니 이로 인해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지경이다. 그들에게 아이디어 싸움은 그만큼 치열하고도 중요한 작업이다.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던 대박코너들. 그 ‘위대한 탄생’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여다본다.

 

 

외부인 마주치면 도망가고 싶은 마음 뿐

 요즘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개그 코너는 두말할 필요 없이 <개그콘서트(개콘)>의 ‘발레리 NO’다. 남성의 주요 부위를 아슬아슬하게 가리는 그들의 민망한 연기에 시청자들의 배꼽은 이미 무장해제 된 지 오래다. 사실 그들의 아이디어는 시청자들에게 선보이기도 전에 묻혀버릴 뻔했다. 이유인즉, 연기를 해야 하는 본인들이 너무나 쑥스러워했기 때문이다.

대박 아니면 쪽박이라는 생각으로 코너를 기획했지만 막상 제작진 앞에 서서 아이디어 검사를 맡으려 하자 민망함이 밀려와 어찌해야 할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고. 게다가 아이디어 검사에 나선 제작진은 여성 PD였는데 그가 코너의 대박을 예감해 과감히 밀어붙여 방송 전파를 탈 수 있었다. 이들은 코너가 대박을 친 요즘도 녹화 현장에서 타이즈를 입은 채 외부인을 마주치면 도망가고 싶은 마음뿐이라며 자신들의 고충을 털어놓기도 한다.

 

 

국립발레단 레슨에 블랙스완 단체 관람도

 멤버 4인방 가운데 한 명인 박성광은 ‘발레리 NO’가 무대에 설 수 있는 원동력으로 다름 아닌 ‘보호 장비’를 손꼽았다. 실제 발레리노들도 보호용 캡을 사용하지만 자신들의 캡은 격투기용 캡이라고 한다. 멤버 가운데 격투기 대회 참가경력이 있는 이승윤이 직접 구해왔다고.

“디테일함을 막아주는(?) 효과가 있어 크게 부담스럽진 않다”는 게 박성관의 설명. 그는 ‘발레리 NO’ 이후 달라진 근황에 대해 “국립발레단에 가서 레슨을 받기도 하며 최근 발레를 소재로 한 영화 <블랙스완>을 멤버들이 단체 관람하기도 하는 등 발레와 부쩍 가깝게 지낸다”며 “‘발레리 NO’ 이전에는 발레에 대사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를 만큼 문외한이었지만 이제는 나름대로 발레 전도사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그는 “멤버들이 대형마트에 가면 자꾸만 각종 물건을 중요부위에 대보느라 바쁘다”며 지나친 아이디어 회의에 따른 자신들의 직업병을 걱정했다. 개그 무대에 오르는 무궁무진한 소재들은 어디서 영감을 얻게 되는 것일까.

 

 

“아이돌 형사 하나 있는 게 이상한가?

 개그맨들은 생활 속 아이디어가 대부분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 중에서도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동안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많이 나오는 편이라는데 <개콘>의 ‘꽃미남수사대’도 드라마를 보던 도중에 우연히 탄생한 코너다. 사건 현장에서 형사들이 범인 잡기는 뒷전이고 패션에만 관심을 두고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린 이 코너는 멤버 가운데 막내인 김대성이 SBS 드라마 <싸인>을 보고 기획한 것이다.

드라마 <싸인>에는 극중 형사로 등장하는 정겨운의 옷차림을 두고 상대역인 엄지원이 “옷차림 좀 신경 써라. 자기가 무슨 아이돌인 줄 아나?”라고 지적하자 정겨운이 “아이돌 형사가 어때서? 대한민국 형사 수천 명 가운데 아이돌 형사 하나 있는 게 이상한가?”라고 답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를 본 김대성이 탁 하고 무릎을 친 것. 김대성의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무명시절부터 함께했던 이광섬과 김원효에 이어 류근지, 강력한 한방을 심어줄 고참 박성호 등이 차례로 합류해 지금의 코너가 완성됐다.

 

 

취객 연기 롤 모델 올드보이 최민식 모방

 ‘꽃미남수사대’에 출연 중인 김원효 역시 자신의 아이디어가 대부분 드라마와 영화에서 얻어진다고 했다. 그는 ‘범죄의 재구성’과 ‘내 인생에 내기 걸었네’ 등의 히트 코너에서 형사 역할로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그가 최근 ‘꽃미남수사대’에서도 형사 역할을 많이 맡게 된 데에는 어린 시절 즐겨본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형사25시>의 공이 크다고 한다. 실제로 유년시절 형사에 대한 꿈을 키워온 터라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형사25시>를 봐온 경험이 여러모로 도움이 되고 있다고.

‘발레리 NO’의 박성광은 자신의 전작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을 할 당시 영화의 도움으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는데, 그에게 영감을 준 영화는 다름 아닌 <올드보이>와 <바람난 가족>이다. 코너를 기획하며 취객 연기의 롤 모델로 <올드보이>의 최민식을 점찍었고, 부스스한 헤어스타일과 헝클어진 정장 차림 등 영화 속 최민식의 모습을 실제 상당부분 차용했다고 한다.

 

 

“소재 제한 없이 독하게 웃길 수 있는 자리”

 또한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유행어는 영화 <바람난 가족> 속 성지루의 대사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하는데 “쥬니어 팬텀급 3위가 누구인줄 아냐?” “1등도 기억 못하는데 3등을 누가 기억하냐?” 등의 대사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드라마와 영화 이외에 일상생활에서의 꾸준한 관찰은 그들의 아이디어를 풍성하게 해준다.

‘남성인권보장위원회’에서 요술 봉을 흔들어댔던 박성호는 우연히 홍대의 술집에 들렀다가 요술 봉으로 주문하는 술집 손님들의 모습을 보고 아이디어를 착안해 술집 주인에게 물어 요술 봉을 구입했다고 한다. 한편 개그맨들의 아이디어가 가장 많이 쏟아지는 장소는 어디일까. 정답은 바로 매년 열리는 희극인 단합대회 자리다.

<개콘>의 고참 개그맨 김준호는 “희극인들의 MT와 체육대회에서 갖는 장기자랑은 전 세계에서 제일 웃긴 자리”라며 “어지간해선 잘 웃지 않는 개그맨들이 소재 제한 없이 독하게 웃길 수 있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숭그리 당당! 숭당당!’ 저작권(?) 5만원

 더불어 “방송에서 금기시되는 세 가지 욕설, 배설, 성에 관한 코드 등이 넘쳐난다”며 “실제로 많은 코너들이 희극인 장기자랑에서 탄생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종종 선배 개그맨들이 후배 개그맨의 아이디어를 훔쳐 대박이 나는 경우도 있을 만큼 개그맨들 사이에선 아이디어 쟁탈전이 치열하다. 그런데 매우 합법적으로 동료 개그맨의 아이디어를 가져온 케이스도 있다. 그 주인공은 ‘숭그리 당당~’의 주인공 김정렬. 그의 대표적인 유행어 ‘숭그리 당당~’은 본래 그의 아이디어가 아니다.

출연 중인 개그 코너에서 사용할 특별한 주문을 고민 중이던 그는 희극인 체육대회 자리에서 ‘숭그리 당당! 숭당당!’이라는 정체모를 응원 구호를 외치던 동료 개그맨 조정현의 모습을 보게 됐다.

그 자리에서 바로 김정렬은 조정현에게 ‘숭그리 당당’을 써도 되겠냐고 물었고, 조정현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그럴 테면 5만 원을 내놓으라고 했다. 김정렬은 흔쾌히 5만 원을 지불하고 최고의 유행어를 탄생시켰다. 일종의 저작권료였던 5만 원이 그를 현재 어엿한 빌딩의 소유주로 만들어주었으니 이것이 그의 인생 최고의 투자였던 셈이다.

 

이학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