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85살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 자연히 과거를 되돌아보게 된다.
66년 전인 1941년, 일본 상지대학에 갔을 때 학생 기숙사 사감이셨던 피스터 신부님은 나를 보고 기린아(麒麟兒)라고 하셨다. 행운아라는 말씀이었다.
처음에는 그 뜻을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 말씀 그대로 나는 정말 많은 시련과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들에 비해 여러 가지 의미로 행복한 인생을 살아왔다.
예수님이 나를 따르기 위해 부모와 집 모든 것을 떠난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백배의 축복을 받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하셨다(마르 10, 28-30).
이 말씀 그대로, 본래는 다른 길을 가려다 주님께서 어머니를 비롯해 이런 저런 분들을 통해 일러주신 사제의 길을 살아온 나는 현세적으로도 백배 아니 그 이상의 상을 받았다.
그리고 이제 미구(未久)에 맞이할 죽음을 거치면 -부족하고 자격도 없지만- 모든 것을 용서하시는 자비 지극하신 하느님은 당신의 그 영원한 생명으로 나를 받아주실것이다.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이 누리시는 생명,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는"(묵시 21,4) 그 생명으로 인도해 주실 것이다.
아, 이 얼마나 큰 은총인가?
까를로 까레또 수사는 하느님은 당신을 믿는 사람은 짓이겨서라도 기어이 당신 것으로 만드신다고 했다. 내 경우도 어느 정도 그러했다. 신부되는 것, 스스로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될 수밖에 없도록 인도하셨고 주교와 추기경의 삶은 명령으로 떨어졌고, 여기에 따르는 긴 세월의 삶이 단순하지 않았다. 몇 번이고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었다. 십자가를 벗어 던지고 싶었다. 그러나 결단의 용기를 내지 못하였다. 결국 "뜻대로 하소서"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죄인이다. 허물이 많은 사람이다. 하느님 앞에서는 고개도 들 수 없는 대죄인 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오히려 이런 죄와 허물을 통해서-사도 바오로가 죄 많은 곳에 은총도 충만히 내리셨다(로마 5,20)고 하신대로- 당신의 사랑, 당신의 자비, 당신의 그 풍성한 용서의 은총을 깨닫게 하여 주셨다.
달리 말하면 나는 죄로 말미암아 자비 지극하신 하느님 사랑을 더 깊이 깨닫고 믿게 되었다. 아니, 하느님은 죄까지도 당신 은총의 기회로 삼으셨다. 나의 하느님은 참으로 돌아온 탕자를 껴안아 주시는 어진 아버지이시다.
오, 펠릭스 꿀빠!(Oh, Felix Culpa! 오, 복된 탓이여!)
이제 나는 나를 이렇게까지 큰 은총으로 축복하여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 또 감사를 드리고 또 드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여생이 얼마일지 알 수 없으나 이제는 진실로 하느님 영광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나의 주교표어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대로 성체성사의 주님처럼 생명의 빵이 되는 삶, 모든 이의 '밥'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하느님이 뜻하시는 대로,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이콘(ICON)이 돼야 할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온 마음을 다해,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해, 나의 모든 걸 바쳐서 주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주님께 영광 있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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