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노적사 주지, 동인 종후스님

이학성 기자 2014. 11. 18. 13:21

 

 

 

                                                “진리(眞理)의 도량 노적사”

                                                              노적봉의 정기를 받은 “전통사찰”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면 그 자리가 바로 극락”

 

‘노적사(露積寺)’를 찾아서...

 북한산성 대서문을 통과해 남대문 방향 탐방로를 따라 20분 정도 올라가면 중성문이 나온다. 이중성문에서 10분 정도 더 걸으면 계곡에 놓인 운하교라는 다리를 만나게 된다. 이 다리를 건너 10분 정도 가파른 오솔길을 오르면 노적사 전통사찰을 만나게 된다. 계곡에 놓인 다리가 바로 노적사 입구인 셈이다. 이 다리에서 노적사를 오르는 곳곳에는 평소 마음에 담아두면 좋은 글귀가 담긴 팻말들이 탐방객을 맞는다. 제법 가파른 경사길이지만 틈틈이 나타나는 이 팻말들에 적힌 글들을 읽다보면 어느새 노적사 입구인 범종각 아래 사찰입구 계단까지 도착하게 된다. 사찰입구에는 가파른 경사에 범종각이 가로 막고 있어 조금은 답답한 느낌을 주지만 계단을 밟고 올라서 사찰 앞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다가오는 장관은 눈과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바로 노적봉의 멋진 장관이 그대로 펼쳐진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노적사앞 마당에서 올려다보는 노적봉과 적멸보궁의 처마는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는 멋진 풍경이 연출 되고 있다. 보통신앙세계에서 바위는 ‘기돗발이 잘 먹히는 곳’이라고 한다. 흔히 우뚝 솟은 암릉이나 바위는 다른 곳에 비해 기가 센 곳으로 알려저 있다. 때문에 이런곳은 어떤 종교를 막론하고 수행이나 기도처로 각광을 받는 경우가 많다. 서울근교에서도 인런 암릉을 배경으로 자리한 사찰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암릉이나 바위로 이루어진 봉우리가 많은 북한산이나 도봉산에서는 사실 흔히 만날 수 있는 사찰이다. 그 가운데 노적봉을 배경으로 북한산성 내에 자리한 노적사 사찰 주지, 동인 종후 스님을 찾아 만나보았다.

 

조선 숙종시대 창건된 “유서 깊은 전통사찰”

 동인 종후 주지스님은 “노적사는 명산중의 명산 북한산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고 조선 숙종시대 1712년에 창건된 유서 깊은 전통사찰입니다. 산길을 걸어, 돌계단을 걸어서 노적사에 올라와, 올려다보면 그 신령함과 원만함에 누구나 탄복케 하는 노적봉 아래 자리한 노적사에 오늘도 많은 이들이 오고 갑니다”며“ 저마다의 생(生)과, 저마다의 사연, 저마다의 소원을 안고 노적사를 다녀가는 거죠”라고 말한다.

 

“진리(眞理)의 집” 노적사가 북한산에 있다.

 노적사는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셨다는 적멸보궁이 인상적인 곳이다. 진신사리를 모신탑이 그대로 보이도록 적멸보궁 뒷벽을 허물고 유리창을 단 모습이다. 안에서 탑을 보며 예불을 올릴 수 있도록 했다. 2층으로 지어진 대웅전 건물 1층엔 불교관련 문헌이나 도서를 연람할 수 있는 작은 휴식공간이 마련되 있다. 작은 부지 안에 오밀조밀하게 배치된 가람 구조가 인상적이다. 북한산성 계곡 트레킹 중에 잠시 들러 노적봉 장관도 감상하고 약수물도 마시며 잠시 휴식하기도 좋은 곳 이다. 노적사에서 바라보이는 노적봉은 휴일이면 암벽 등반하는 무리들이 모이는 곳이다. 이렇듯 노적봉을 오르는 일단의 등반가들 모습도 접할 수 있는 노적사는 이모저모로 생각거리를 안기는 사색의 공간으로 충분한 곳 이다.

 

“부처님 가르침대로 사는 그 삶이 바로 행복, 그 자리가 바로 불성”

 1942년 전북 완주에서 태어난 동인 종후 주지스님은 군을 제대하고 25세 되던 해 불교와 인연을 맺었다. 성인이 된 뒤 출가했다면 원력(願力)을 세웠을 것이다. 스님은 “거창한 출가 동기는 없습니다. 속세에서 되는 일이 없다 보니 절에 가면 뭔가 풀리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입산했습니다. 그러다 잘되면 다시 속세로 나오고 안 되면 평생 있자고 생각 했는데 안되더라고요”라고 토로 한다. 출가 동기를 이처럼 솔직하게 말하는 스님은 찾기 힘들다. 어려서 출가했는데도 ‘발심출가’로 내세우는 스님들이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출가 동기뿐만 아니라 수행 이력도 각색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종후스님은 모든 것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그 점이 오히려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스님을 찾게 만든다. 스님이 평생을 흔들리지 않고 수행자로서 올곧게 살아온 힘은 우직하리 만큼 지켜온 ‘원칙’이다. 스님은 좌고우면하지 않는 솔직한 심성처럼 한 치의 의심 없이 초발심 시절 배운 그대로 믿고 지켜왔다. 갓 출가해서 본 “초발심자경문”과 승가대학(강원)에서 본 “금강경”이 스님이 평생 간직하고 지켜온 버팀목이다. “초발심자들이 지켜야할 가르침이 ”초발심자경문“에 들어있다. 종후 주지스님은 ”부처님 가르침대로 사는 그 삶이 바로 행복이며 그 자리가 바로 불성입니다. 일반 중생은 마음이 욕심에 가려져 그대로 살면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삶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못하는 이유는 중생심 때문입니다.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면 후회도 없고, 불행도 없습니다.“고 말하며 ”극락 지옥이 하늘나라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면 그 자리가 바로 극락이며 도솔천이지요“라고 전한다.

 

“부처님과 함께 영원히 존재하는 노적사”

 만중생의 불성(佛性)이 깨어나게 하고 만중생이 성불(成佛)할 수 있도록, 만생명이 부처님의 정법(正法)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북한산 끝자락에 위치한 노적사는 이미 그렇게 부처님과 함께 영원히 존재해 왔던 것이다. 노적사를 찾는 신도들에게 종후 스님은 늘 “가는 동안 무사히 엎어지지 말고 가라”는 것이다. 노적사로 오가는 산길이 험하기에 전하는 인사말이지만 험한 인생길 무사히 잘 살아가라는 의미도 내포돼 있는 듯하다. 종후 스님과 노적사를 만나고 오는 필자도 역시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큰 해답을 얻은 듯해 가슴 뿌듯함이 느껴진다.

이학성 취재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