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해상, 해군 초계함인 천안함 침몰 사건

이학성 기자 2010. 5. 7. 13:33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해상, 해군 초계함인 천안함 침몰 사건

 

 사건 발생 직후 출동한 인천해양경찰서 소속 해안경비정에 의해 천안 함에 탑승하고 있던 승조원 104명 중 58명이 구조되었으며 나머지 46명은 실종되었다. 이후 실종자 수색과 선체 인양이 진행되면서 2010년 4월 24일 17시 현재 실종자 46명중 40명이 사망자로 확인되었으며 6명이 실종자로 남아 있다. 한편 실종자 수색과정에서 3월 30일에는 UDT 대원인 한주호 해군준위가 작업 중 실신하여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순직하였다. 김현진 상사, 김정호 상사도 실신해 현재 치료중이다. 4월 2일에는 저인망어선 금양98호는 천안함 실종자 수색을 마치고 조업구역으로 복귀하던 중 서해 대청도 서쪽 55km 해상에서 침몰해 탑승 선원 9명 중 2명이 숨지고 7명이 실종됐다.

 

2010년 4월 24일 현재 본 사건에 대해 정부와 군의 중심으로 구성된 민군합동조사단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침몰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제기되고 있으며, 사건 발생 또는 침몰 시각과 장소에 대해서도 대한민국 국방부의 공식적인 발표가 있었지만 공식발표와 다른 다양한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 대한민국 국방부에서는 21시 22분경에 사건이 발생해서 순식간에 침몰이 시작되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지만, 사건발생 시각을 21시 15분으로 보는 설도 있다. 사건 발생 장소에 대해서도 대한민국 국방부에서는 북위 37도 55분, 동경 124도 37분, 즉 백령도 서남쪽 1마일(1.6km)해상에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사고 직후에 발표하였으나, 4월 7일에 북위 37도 55분, 동경 124도 36분 해점, 백령도 남서쪽 2.5km 해상이라고 수정하여 공식 발표하였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최초 좌초 지점이 공식 발표보다 2.3km 북쪽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사고 원인에 대해서도 어뢰설, 기뢰설, 내부폭발설, 피로파괴설, 좌초설 등 다양할 뿐 대한민국 국방부의 공식적인 발표가 없는 상태이다.

 

사고 후 구조 및 조사 과정- 생존자 구조, 실종자 수색 및 천안함 인양

 대한민국 해군은 27일 오전 수상함 10여 척과 해난 구조함 평택 함을 포함한 대부분의 병력을 사고 지점에 배치했다. 사고 지점에 배치된 100여 명의 해난구조대(SSU) 잠수 요원들은 사고 선체의 구멍을 조사하고 있다. 28일에는 실종자 수색을 위해 사고 위치에 광양함을 추가로 배치했다. 수색 과정에서 대한민국 해군은 침몰 지점으로부터 서남방 16마일 부근에서 구명복 상의 22개와 안전모 15개를 발견했다.

29일 밤, 아시아 최대의 수송함인 독도함을 침몰한 천안함의 탐색 및 구조 활동을 지휘하기 위해 현장 해역에 긴급 투입했다. 30일, 실종자 수색 작업을 하던 UDT 대원 한주호 준위가 작업 도중 실신해 후송 치료 중 사망, 순직했다. 31일 함수 쪽을 수색한 잠수사의 증언에 의하면, 격실 안에 물이 가득차 있다고 했다.

4월 2일 수색작업을 돕던 쌍끌이 어선 금양98호가 22시 30분쯤 조난신호를 보낸 뒤 실종됐다. 캄보디아 화물선과 충돌하여 침몰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까지 탑승 선원 2명이 숨지고 7명이 실종됐다.

4월 3일 천안 함에서 시신 2구를 발견했는데, 그 중 한 명은 남기훈 상사로 확인됐다. 4월 3일 실종자 가족측이 실종자 수색 작업을 중단해달라는 요청을 했으며, 해군은 실종자 가족 측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4월 7일 함미 절단면에서 김태석 상사가 발견되었다.

4월 15일 천안함의 함미가 인양되었으며 여기서 서대호 하사, 방일민 하사, 이상준 하사, 이상민 병장 등 4구의 시신이 발견, 4월 22일 천안함을 인양하는 과정에서 박보람 하사의 시신이 연돌(굴뚝)에서 발견되었다. 이후 4월 24일 박성균 하사의 시신이 천안함 함수 지하 2층의 자이로(Gyro)실에서 발견되었다.

 

실종자(전사자)가족협의회

 천안함 실종자 가족들은 2010년 3월 30일에 전체회의를 통해 46명의 천안함 실종 장병 가족당 1명씩의 대표를 뽑아 '천안함 실종자 가족협의회'(약칭 천실협)을 구성하였으며, 이 가운데 15~20명으로 실무단을 구성했다. 실종자 가족협의회는 발족 기자회견에서 △실종자 전원의 구조를 위해 마지막 1인까지 최선을 다할 것 △현재까지 진행된 해군과 해경의 초동대처 과정과 구조작업 과정에 대한 모든 자료를 공개할 것 △가족과의 질의응답 시간을 마련할 것 등을 해군에 요구했었다. 실종자 가족협의회 대표로는 고 최정환 중사(32)의 매형 이정국 씨가 맡아 활동해 왔다.

실종자 가족들은 이 사건에 대해 장교는 7명(중령1, 소령1, 대위2, 중위3) 전원 구조된 것에 대해 지휘책임 회피문제를 제기했으나 함장 최원일 중령은 선체의 구조상 장교들이 머무는 작전상황실이 선두에 위치했기 때문에 선미만 가라앉은 사고이므로 장교들은 모두 무사한 것이며 자신도 초계함이 침몰할 당시 약 5분 동안 함장 실에 갇혀있어서 부하들이 함장실 문을 부수고 나서야 함장실 밖으로 나왔는데 이때는 이미 선미부분이 침몰하고 난 이후였다고 진술했다. 사실 이 순간의 상황은 최원일 중령이 작전상황도를 검토하고 있던 도중 사고가 발생하여 최원일 함장이 함장 실에 갇혀 있게 된 것을 부함장 김덕원 소령이 부하들을 데리고 와서 문을 부수고 최원일 중령을 구조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당시 초계함의 모든 전력이 차단되어 정전상태였기 때문에 함장인 최원일 중령은 자신의 휴대전화를 이용하여 사고 상황을 상부에 보고했다.

 

천안함 실종자 가족협의회는 2010년 4월 21일에 평택 제2함대 사령부에서의 기자회견을 가족 전체회의를 통해 직계 가족으로 이뤄진 새 가족대표단 '천안함 전사자 협의회'(약칭 천전협)로 전환했다고 밝혔다. 새로 조직된 천전협은 천안함 희생·실종자 가족당 직계가족 1명씩을 대표로 모두 46명으로 구성됐으며, 아직 실무단을 따로 뽑지는 않았다. 천전협과 함께 5인으로 구성된 장례위원회가 구성되어서 군과 장례절차를 협의할 예정이다.

 

침몰 원인

 침몰원인에는 크게 북한공격설과 사고설이 있다. 북한공격설은 어뢰설, 매설기뢰설, 대함화기공격설을 말하고, 사고 설에는 유실기뢰사고설과 암초좌초설, 선내폭발설, 자체결함에 의한 피로파괴설 등으로 나뉜다. 기뢰에 의한 사고의 경우, 한국전쟁이나 훈련 중 "유실된 기뢰"라는 사고설과 북한이 고의적으로 "매설한 기뢰"라고 보아 북한공격설로 볼 수 있다는 주장으로 나뉜다. 한편 위에서 나열한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한 가설 중 외부충격에 의한 가설은 북한공격설 모두와 사고 설 중 유실기뢰사고설, 암초좌초설이 모두 여기에 해당된다. 내부충격에 의한 것은 선내폭발설이 유일하며, 피로파괴설은 외부나 내부에 의한 충격, 그 어느 것도 아닌 경우이다. 일부에서는 암초좌초와 피로파괴가 순차적으로 일어났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2010년 4월 15일 천안함 함미를 예인하여 조사하게 됨으로써 침몰원인이 조금씩 밝혀졌다. 비록 잠정적이긴 하지만 민군 합동조사단 참가자중 일부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외부충격에 의한 침몰의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어 4월 25일 합동조사단은 외부충격에 의한 폭발로 비접촉식 수중 폭발로 인한 침몰이라고 발표했다. 이로 인해 북한공격설, 그 중에서도 수중 버블제트 어뢰에 의한 침몰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김영삼도 북한 공격설을 주장했다. 그러나 아직 북한이 공격을 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 한편 북한 어뢰에 의한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주장에 대해 북한은 남한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어뢰공격설

 북한의 어뢰공격설은 북한잠수정에 의한 어뢰공격과 인간어뢰에 의한 공격까지 포함하고 있다. 2010년 4월 2일 김태영 국방장관은 천안함의 사고원인으로 거론되고 있는 내부폭발과 기뢰, 암초, 피로파괴 등은 발생했을 가능성이 낮으며 폭발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어뢰 가능성이 기뢰 가능성보다 높다"고 국회에서 답변했다. 군 당국은 북한이 버블젯 어뢰를 개발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천안 함의 침몰 원인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원인을 추정하고 있다. 2010년 4월 15일 인양된 천암함의 파괴된 단면을 분석한 결과 선체 바닥 왼쪽의 철판이 안으로 휘어져 있어 외부폭발 그 중에서 어뢰일 가능성이 높다고 민군 합동 조사단은 밝혔다. 또한 침몰당시 TNT 200KG에 해당하는 지진파가 감지된 점과 생존자의 증언 등을 이 정도의 충격은 어뢰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 어뢰가 함미를 직접 타격하는 직격어뢰인지 수중폭발로 인한 거품으로 공격하는 버블제트 어뢰인지는 더 조사를 해야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인양된 함수의 유리창이 깨지지도 않고 흠집도 거의 없어 어뢰 또는 기뢰에 의한 폭발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4월 25일 합동조사단은 절단면과 내외부 육안검사를 볼 때 선체 절단면이 위를 향해 있는 점, 그을음과 열상 흔적이 없는 점을 들어 비접촉 폭발(버블제트)의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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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기뢰공격설

 북한에 의한 기뢰 설은 북한이 (반)잠수정 등을 이용해 백령도 근해로 침투하여 사전에 기뢰를 매설해 두었는데, 천안함이 이를 모르고 지나가다 기뢰가 작동해서 타격을 입었다는 주장이다.

 

대함화기공격설

 북한이 기뢰나 어뢰가 아닌 대함화기로 직접 공격했다는 주장이다. 대함화기공격설은 역시 북한이 공식적으로 천안함과 관련이 없다고 발표한 점과 북한의 직접 공격하였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인사들의 주장이 이어지거나 그런 주장과 관련된 증언이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4월 23일 류우익 주중 한국대사는 북한이 직접 공격해서 천안함이 침몰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남북화해 원고 쓰다가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인하여 너무 분노하여 남북화해 원고작성을 중간에 포기했다. 북한으로부터 귀순하여 최근 북한의 암살조로부터 암살당할 뻔했던 황장엽 역시 천안함은 북한이 공격해서 침몰한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이것이 김정일의 진짜 정체라고 주장했다. 뉴데일리에 따르면, 북한의 신원을 알 수 없는 고위 장교의 증언하기를 김정일의 3남인 김정은이 천안함을 침몰시키도록 지시했으며 김정은은 천안함이 침몰되자 작전 성공에 대해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이 고위 장교는 북한에서 김정은의 지시를 받은 13명의 대원이 비파곶에서 출발하여 천안함을 침몰시켰다며 이 사실은 이미 군부는 물론 시민들 상당수도 천안함을 누가 쐈는지 알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이 고위 장교는 북한의 해군이 평소에 백령도 인근에서 조업하는 북한 어선과 중국어선 사이에 끼어들어 위장하는 연습을 많이 했으며 민간어선만 있는 것으로 위장하여 공격하는 연습을 많이 해왔다고 설명했다.

 

기뢰사고설

 대한민국 영토인 백령도 근해에 기존에 매설되었으나 미처 제거하지 않은 기뢰에 의해 천안함이 침몰되었다는 주장이다. 제거되지 않은 기뢰는 6.25 전쟁 당시 북한군 동해와 서해에 설치한 기뢰가 다 제거 되지 않은 채로 바다 밑에 남아 있다가 강한 물살에 남쪽으로 흘러내려와 천안함에 부딪혀 폭발했다는 설과 1970대 한국 해군이 전시대비 설치한 것을 천안함이 실수로 건드렸다는 설이 있다. 김태영 국방장관은 북한군 기뢰에 관하여 "비록 많은 기뢰를 제거했다고 하지만 물속에 있는 기뢰를 100% 수거하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기뢰가 바다로 흘러내려 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힌 반면, 서해안에 설치된 한국군 기뢰는 현재 다 제거 되었다며 한국군에 관한 가능성을 일축하였다. 또한 염분이 강한 바닷물에서 30년이 지난 기뢰가 폭발할 가능성도 적으며 사고수역은 많은 어선들이 다니던 곳인데 갑자기 떠올라 폭발할 가능성도 낮다.

 

암초좌초설

 사고 근해에 있는 암초 또는 바다 바닥에 천암함이 부딪혀서 사건이 발생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의 근거는 인양된 함미에서 확인되는 긁힌 자국과 해군 제2함대 사령부의 브리핑 자료, 해경에 구조요청시 신고내용, 백령도 주민들의 증언 등이다. 함미의 우측은 깨끗한데 반해 함미의 좌측에 긁힌 자국이 선명하게 보이고, 해군 제2함대 사령부가 사고 다음날인 3월 27일에 기자들에게 브리핑할 때 사용한 작전상황도에 등장하는 "좌초"라는 문구와 사고시점의 수심을 4m로 적어 둔 것을 결정적인 증거라고 보고 있다. 여기에 해경 또한 해군으로부터 "좌초에 처해 있으니 구조해 달라"는 구조 요청을 받았다고 말한 점도 좌초설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그리고 백령도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사고 인근에 있는 암초에 천안함이 좌초했을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사고 지점에서 800m 떨어진 곳에 수중 암초가 있는데, 주민들에 의하면 이 암초가 "밀물 때는 잠겨 있어 알고 피해 다닌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더군다나 천안함 기관병으로 근무했던 박모씨의 연합뉴스 기고에 의하면 썰물 때 천안함의 스크루가 암초에 걸려 배의 함미가 위로 뛰어 오르면서 받은 충격에 그는 충격음이 배 안에서 폭발음처럼 들릴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가설로는 백령도 지진관측소에서 확인된 지진파를 설명할 수 없다. 또한 4월 25일 천안함을 예인하여 조사한 결과 배의 밑이 온전한 것이 확인돼 이 가설도 신빙성이 낮아졌다.

 

선내폭발설

 천안함 선내에 있는 함포탄과 어뢰가 노후화로 인하여 폭발했을 것, 혹은 함내부에 불만이 있던 자가 일부러 저질렀다는 추측이다. 그러나 탄약고에 있는 무기들이 분리 보관 되어 왔다는 점, 침몰당시 화약 냄새가 전혀 없었다는 점, 폭발로 인한 부유물이 주변에 없었다는 점, 그리고 평상시 사고 칠 만한 사병들 또한 딱히 없었다는 점 때문에 신빙성이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또한 천안함이 인양된 이후 확인 한 결과 내부의 폭발물은 안전한 상태로 확인되었다.

 

피로파괴설

 ‘피로파괴’란 미세한 균열이 장시간의 누적된 충격과 압력에 의해 갑작스런 파괴로 이어진다는 현상인데, 침몰한 천안함이 피로파괴로 침몰되었다는 주장이다. 피로파괴 침몰의 원인이었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 다만 희생자 가족을 비롯한 여러 증언과 어뢰, 기뢰 등에 폭발 가능성이나 좌초 가능성 낮을 경우 가장 높은 개연성이 있다는 것에 근거하고 있다. 사고 직후 일부 실종자 가족들에 의하면 실종자들이 선내에 물이 샌다는 증언과 함께 [61] 수리 도중 무리한 작전 때문에 배가 침몰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 되었다. 한편, 4월 23일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초빙연구원인 박선원 박사는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하여 "한국이 공개하지 않은 자료는 미국이 다 갖고 있다"며, "우리는 선체의 결함 이외에 다른 침몰의 요인을 알지 못한다"며 선내결함설에 무게를 실었다. 그러나 천안함의 절단면은 깔끔하게 절단되어 있지 않고 찢겨져 있는 상태여서 피로파괴설은 설득력이 없다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또, 최초 폭발 당시 백령도 지진관측에서 관측한 지진파가 피로파괴에 의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다. 한편, 천안함 함장이었던 최원일 중령은 실종자 가족들이 제기한 선체결함에 대해서 “수리한 적도 없을 뿐만 아니라 물이 샌 적도 없다”고 말했으며, 생존 장병들과의 기자 회견에서도 "물이 샌다고 말하는 건 온도차로 습기가 만들어지는 것을 두고 오해하는 것이다."라며 부인했다.

 

암초좌초후피로파괴설

 암초에 좌초된 후 침수 등에 의해 피로파괴가 일었났다는 주장이다. 피로파괴설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론 중 하나인 절단면이 매끄럽지 않다는 것에 대해서 아메리칸 스타호의 사례에서처럼 좌초후피로파괴의 경우에는 절단면이 매끄럽지 찢기는 형성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함께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천암함이 예인 된 이후 조사한 결과 배의 밑이 온전한 것이 확인돼 이 가설도 신빙성이 낮아졌다.

 

정부 및 군 당국의 정보 은폐 논란

국방부는 사고 원인이나, 사고 시각 등에서 진술을 수차례 번복하였다. 소송의 경우에, 진술의 잦은 번복은 외부의 강압이 있거나 거짓말을 하는 경우에 흔히 발생한다. 국방부가 계속 거짓말을 한다는 보도가 많이 나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4월 1일 한나라당 의원들과 가진 오찬간담회에서 "있는 사실 그대로 국민에게 밝히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국방부 장관은 어뢰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본다고 국회에서 답변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어뢰는 사전에 소리가 탐지되는데, 탐지된 적이 없다고 진술하고 있다. 반면에, 이종걸 민주당 의원은 천안함에 승선해있던 한 장병이 가족과 휴대전화 통화를 하다 오후 9시16분쯤 갑자기 "지금은 긴급 상황이라 통화가 어렵다. 나중에 통화하자"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폭발 6분 전에 비상이 걸렸다면, 접근하는 어뢰를 발견했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함대사령부와 어뢰접근에 대한 비상교신이 있을 수도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국방부는 계속 최초 보고는 "휴대전화"였다고 진술하고 있다. 폭발 전에는 전혀 징후를 몰랐고, 폭발 후에는 전기가 나가서 휴대전화를 사용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국회 국방위에서 군함에 휴대무전기도 없느냐고 질타하자, 그 이후 언론보도에서는, 최초는 휴대전화였는데, 나중에는 휴대무전기로 보고했다고 진술을 번복하고 있다. 해병대는 사고 폭발음을 듣고 난 후에 TOD를 촬영해서 격침 동영상은 촬영하지 못했다는데, 이 진술도 의심스럽다. 함내에 비상이 걸렸는데 침실에서 잠자는 장병이 있을 수도 없다.

 

국방부는 40여명의 실종 장병이 대부분 침실에서 자다가 사고를 당해 그곳에 있을 것이라고 진술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함장의 최초보고가 "피격당했다"는 것이었다고 보도했다. 국방부는 부인했다. 26일 21시에 침몰했는데, 그 다음날인 27일 오후 3시 평택 2함대사령부내 예비군 훈련장에서 유가족을 대상으로 한 설명회에서 생존한 대위는 "선내폭발이나 암초는 절대 아니다. 장담한다"고 진술한 적이 있다. 현재 생존 장병은 전원 국군수도병원에 정신치료가 필요하다며 외부인의 접근을 막고 있다.

"기뢰는 다 제거되었다"고 주장하던 과거와는 달리 4월 12일에는 "아군 기뢰 전량 제거된 것 아니다"며 진술을 또 번복하였다.

군의 거짓말도 있었다. 군은 최초 사고당시 "실종자 가족들에게 가장 먼저 실종 사실을 알렸다"고 주장하였으나, 실제로는 언론에 4시간 먼저 명단을 밝힌 것으로 드러났다.

                                                                                                                                                                                        사회부 / 이학성 기자

 

 

 

 

사망자 및 실종자, 생존자 명단-

사망자 명단

상사 : 김태석(기관 조정실), 남기훈(원사, 상사 식당), 문규석(중사 휴게실)

중사 : 박석원(기관부 침실), 신선준(72포 하부 탄약고), 김종헌(후타실), 민평기(승조원 화 장실), 강준(기관부 침실), 최정환(승조원 화장실), 정종율(기관부 침실), 안경환(기관 부 침실), 김경수(승조원 화장실)

중사(진) : 임재엽(72포 하부 탄약고)

하사 : 방일민(승조원 식당-기관부 침실 통로), 서대호(승조원 식당-기관부 침실 통로), 이 상준(승조원 식당), 차균석(유도 행정실), 서승원(디젤 기관실), 조진영(기관부 침실), 손수민(승조원 화장실), 문영욱(제독소), 심영빈(승조원 화장실), 조정규(기관 창고), 김동진(후타실), 박보람(배 밖 연돌), 박성균(자이로실)

병장 : 이상민(1988년생, 승조원 식당), 강현구(기관부 침실), 이용상(후타실), 이상희(기관부 침실), 이상민(1989년생, 기관부 침실), 이재민(기관부 침실)

상병 : 안동엽(기관부 침실), 박정훈(기관부 침실), 김선명(기관부 침실), 김선호(후타실), 정 범구(전기 창고)

일병 : 조지훈(승조원 화장실), 나현민(기관부 침실)

이병 : 장철희(기관부 침실)

 

최초 실종자 명단

원사 : 이창기

상사 : 최한권, 남기훈, 김태석, 문규석

중사 : 박경수, 강준, 김경수, 박석원, 안경환, 신선준, 김종헌, 최정환, 민평기, 정종율

하사 : 임재엽, 문영욱, 이상준, 손수민, 심영빈, 장진선, 조정규, 서승원, 방일민, 박성균, 조 진영, 서대호, 차균석, 김동진, 박보람

병장 : 이상희, 이용상, 이재민, 강현구, 이상민(1989년생), 이상민(1988년생)

상병 : 정범구, 김선명, 박정훈, 안동엽, 김선호

일병 : 강태민, 조지훈, 나현민

이병 : 정태준, 장철희

 

생존자 명단

중령 : 최원일

소령 : 김덕원

대위 : 이채권, 박연수

중위 : 김광보, 정다운, 박세준

상사 : 김병남, 김덕수, 오성탁, 김수길, 허순행, 김정운, 강봉철, 오동환, 정종욱

중사 : 이광희, 김현래, 조영연, 손윤식, 송민수, 김현용, 김광규,

하사 : 홍승현, 육현진, 공창표, 이연규, 허향기, 진경섭, 배성모, 전승석, 함은혁, 박현민, 강 은강, 정재환, 김효형, 김기택, 서보성, 정주현, 유지욱, 정용호, 라정수, 신은총, 김정 원

병장 : 전준영, 최광수, 김용현, 강태양, 최성진

상병 : 안재근, 김윤일, 정현구

일병 : 김수철, 오예석, 황보상준

이병 : 이태훈, 전환수, 이은수

 

사건일지

2010년 3월 26일 21시 22분 : 천안함 침몰

2010년 3월 26일 23시 30분 : 해양경찰청은 본청과 인천지청에 갑호비상령, 태안 · 속초지 서, 동해지청에 을호비상령을 발령했다.

2010년 3월 26일 23시 50분 :경찰청은 서울 · 인천 · 경기 · 강원지방경찰청에 을호비상 령을 발령했다.

2010년 3월 27일 : 정운찬 국무총리는 행정안전부를 통해 전 행정기관에 당직근무를 강화 하고 모든 공직자가 유선 상으로 대기하도록 비상대비 체계를 발령했 다.

2010년 3월 29일 : 선미에 공기 주입 시작.

2010년 3월 30일 : 구조 작업을 벌이던 잠수요원 한주호 준위 사망

2010년 3월 31일 : 기상 악화로, 구조작업에 차질이 빚어졌다. 구조팀은 선내진입에 주력 할 것이라고 밝혔다.

2010년 4월 2일 22시 30분 : 수색작업을 나서던 저인망 한 척이 실종됐다.

2010년 4월 3일 18시 10분 : 남기훈 상사의 시신 식당 안에서 발견

2010년 4월 7일 16시경 : 함미 절단면에서 김태석 상사의 시신 발견.

2010년 4월 8일 실종자 가족과, 생존자 가족들의 만남

2010년 4월 11일 천안함 사고 원인 규명할 민간, 군인 합동 조사단 구성

2010년 4월 12일 끌어올린 함미가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냄

2010년 4월 15일 오전 9시부터 함미 인양에 착수

2010년 4월 15일 오전 11시 이후 방일민 하사, 서대호 하사, 이상준 하사 등을 포함한 36 구의 시신 수습

2010년 4월 22일 오후 9시 20분 박보람 하사. 연돌(굴뚝) 안에서 발견.

2010년 4월 24일 오전 10시 54분 박성균 하사. 함수 자이로실에서 발견.